[데스크가 만난 사람]“의성 산청 산불 위험도 평년의 4배… 기후변화로 한반도 전역 위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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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산불 11곳 동시다발적 발생… 기후변화 빼곤 설명 못 해
기온 오르고 건조한 대기… 겨울 눈 적으면 3, 4월 위험
산불 대형화는 세계적 현상… 산사태-홍수 등 후속 재난 유발도
모니터링 등 사전 예방이 최선… 한국, 산불 대응 기술 선도 가능

《지난달 21일부터 경북 경남 울산 등에서 발생한 동시다발적 산불은 ‘사상 최악’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서울 면적의 80%에 해당하는 산림이 불에 탔고 7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022년 울진 삼척 산불도 역대급이었는데 3년 만에 더 큰 산불이 발생한 것이다. 기후환경 전문가인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31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경북 의성군과 경남 산청군의 산불위험지수(FFDI)를 분석해 보니 산불 발생 직전 위험도가 평소의 4배였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기후변화로 한반도 전역이 대규모 산불이 발생하기 쉬운 여건이 됐다”며 “이제 3, 4월 산불이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사전 모니터링과 예방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3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후변화로 한반도 전역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라며 “지역별로 산불 위험도를 모니터링하면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사전 대응을 해야 막대한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3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후변화로 한반도 전역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라며 “지역별로 산불 위험도를 모니터링하면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사전 대응을 해야 막대한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이번에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한 원인이 뭔가.

“산불은 실화 등 여러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왜 이렇게까지 크게 확산됐는지인데 이는 기후변화라는 요인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대기가 건조하고 땅의 수분이 적은 상태에서 마른 낙엽까지 쌓여 있으면 작은 불씨도 폭발적으로 번지기 쉽다. 이번에 대기와 땅, 낙엽의 건조도를 종합적으로 반영한 산불위험지수를 분석해 보니 의성과 산청의 경우 3월 말 산불 위험도가 과거 40년 평균 대비 약 4배로 높아진 상태였다. 기온이 오르고 대기가 건조해 언제든 큰 산불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왜 산불위험지수가 높아졌나.

“겨울에 눈이나 비가 많이 안 왔기 때문이다. 눈이 적게 쌓인 상황에서 날씨가 풀리면 녹은 눈이 증발하며 땅이 금세 건조해진다. 땅만 마르는 게 아니라 산불 발생 시 연료 역할을 하게 되는 식물과 낙엽에서도 수분이 증발한다. 특히 식물의 경우 뿌리까지 마르면서 산불이 순식간에 옮겨붙기 쉬운 상태가 된다.”

―산불이 발생한 11곳 대부분이 남부 지역이었다.

“의성, 산청뿐 아니라 지난겨울 남부 지역에 강수량이 적었던 영향으로 보인다. 반면 수도권을 포함한 중부 지역에는 눈이 상당히 왔다. 땅이 축축하고 쌓인 낙엽에 수분이 많으면 실화가 발생하더라도 금방 불길이 사그라든다. 이 때문에 올 초 전문가 사이에선 ‘중부 지역에는 올봄 큰 산불이 없을 것 같다’는 예상이 많았다.”

―산불에 특히 취약한 지역이 있나.

“그건 해마다 다르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한반도의 기온은 과거보다 올라간 반면에 강수량은 소폭 줄었다. 전반적으로 산불이 나기 좋은 환경이 된 것이다. 다만 강수량은 해마다 지역별로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특정 지역이 항상 산불에 취약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2022년에는 경북 울진군과 강원 삼척시를 중심으로 큰 산불이 발생했고 2023년에는 서울 인왕산과 북악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났다. 한반도 어디서든 큰 산불이 날 수 있는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언제가 위험한가.

“과거 자료를 보면 매년 3, 4월 땅이 급속하게 마르면서 산불이 발생할 확률이 커진다. 특히 직전 겨울 강수량이 적었던 지역은 한마디로 땅에 기름이 뿌려진 상태라고 보면 된다. 과거처럼 아무렇지 않게 담배꽁초를 버리거나 쓰레기를 태우다가는 큰일 날 수 있다. 더구나 기후변화로 지역별 강수량 편차가 확대되고 있어 산불 피해는 갈수록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2022년 울진 삼척 산불을 다룬 논문을 발표했다.

“지난해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강원 강릉·동해·삼척시와 경북 울진군의 과거 100년 치 기상관측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겨울 기온이 평균 4도 상승하고, 강수량은 17mm 감소했으며, 상대습도는 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지역이 ‘춥고 습한 겨울’에서 ‘따뜻하고 건조한 겨울’로 바뀌면서 화재에 더 취약해지고 있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생각보다 기후변화의 영향이 커서 나도 놀랐다.”

―최근 해외에서도 대형 산불 소식이 많이 들린다.

“올 1월 발생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산불, 지난해 10월 발생한 그리스 산불, 지난해 여름 발생한 캐나다와 미국 하와이 산불 등은 모두 인간의 힘으로 끄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산불이 더 길게, 더 크게 발생하는 것 역시 기후변화 때문이다. 2018년 ‘네이처 기후변화’에 발표한 논문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대기 건조화 현상을 분석했는데 미국 캘리포니아주, 호주, 지중해, 중국 남부 등에서 큰 산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실제로 이들 지역에서 역대급 산불이 이어지고 있다.” ―대형 산불의 피해를 줄일 방법은 없나.

“산불이 대형화되는 건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만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다. 예를 들어 강수량, 대기 중 습도, 식물의 수분 등 다양한 변수가 포함된 산불 위험 지수를 만들고 지역별로 모니터링하다가 지수가 높아지면 해당 지역을 집중 관리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인력을 대거 투입해 산불 발생 시 연료가 될 수 있는 고사목과 낙엽 등을 치우고, 주민들이 쓰레기를 소각하지 못하게 하고, 등산객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지금도 정부가 건조주의보와 산불 위기 경보를 발령한다.

“지금의 경보 시스템은 너무 단순하고 과학적이지도 않다. 무작정 ‘건조하니 산불을 조심해 달라’고 하는 대신에 한반도의 달라진 기후까지 감안해 실효성 있는 산불위험지수를 만들고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 사전 예방에 드는 돈을 아까워하면 안 된다. 그런데 국내에선 예산을 들여 예방 조치를 취하고 몇 년 동안 아무 일 없으면 ‘괜히 예산을 투입했다’고 담당자가 질책당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임도 및 진화 헬기 확충 등도 필요하지 않나.

“임도를 만들고 산불 진화 헬기를 확충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다만 투입 대비 효과로 보면 산불 발생을 막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기존 산불 전문가들은 과거에 유효했던 방식을 주로 제안하는데 지금은 기후변화로 상황이 빠르게 변하고 있어 새로운 접근과 해결 방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희 연구팀이 지난해 발표한 울진 삼척 산불 논문이 기후변화와 산불의 연관성을 정밀하게 분석한 아시아 지역 첫 논문이었다. 아직 기후변화로 대형화되는 산불에 대한 연구가 매우 부족하다.”

―말씀하신 사전 대응 강화에 예산이 얼마나 필요한가.

“정확히 계산해 보진 않았다. 다만 산불위험지수는 지금 발표되는 기상 자료를 토대로 충분히 산출할 수 있다. 폐쇄회로(CC)TV 확충 등 인프라 개선에 다소 예산이 필요하겠지만 피해 복구 예산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산불이 다른 재난과도 이어질 수 있다고도 했다.

“산불은 그 자체로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주지만 다른 재난을 유발하며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산불로 검게 그을린 지면은 열을 쉽게 흡수하기 때문에 땅속까지 마르면서 산사태나 홍수가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 된다. 산불 시 발생한 미세먼지가 공기를 오염시키는 동시에 땅이 침식되면서 재가 지하수로 유출돼 하천도 오염된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야 할 나무가 소실된 탓에 기후변화를 가속화시키는 요인도 된다.”

―다른 나라는 산불에 어떻게 대응하나.

“최근 세계 각국이 선제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캐나다는 산불만을 감시하는 전용 위성을 띄우겠다고 발표했다. 제가 근무했던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레이더를 투과시켜 낙엽 아래 잔불까지 감시할 수 있는 센서를 개발하고 있다. 다만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은 땅이 워낙 넓다 보니 산불 예방에 한계가 있다. 인프라도 노후화돼 아직 나무 전봇대를 쓰는 곳도 많다. 산불이 발생했을 때 진화 대신 방화선을 구축해 태울 만큼 태우고 꺼지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국토가 크지 않고, 인적 자원이 우수하며, 정보기술(IT) 역량이 뛰어난 한국은 산불 대응 기술을 선도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기후변화가 산불 외에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한반도는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 기후가 교차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을 일 년 내내 받고 있다고 보면 된다. 봄에는 산불, 여름에는 집중호우, 가을에는 늦장마와 태풍, 겨울에는 폭설이 반복되고 있어 연중 대응이 필요하다. 게다가 기후변화의 영향이 갈수록 커지는 만큼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정부와 국민 모두 이제 과하다 싶을 정도로 기후변화 리스크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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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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