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일 근무제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낯익은 인물이 등장한다.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 포드다. 100년 전인 1926년 그는 세계 최초로 주 5일제(하루 8시간, 주 40시간)를 도입했다. 주 6일 근무가 일상이던 시절이다. 포드가 창시한 컨베이어벨트 시스템과 더불어 주 5일제는 미국,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한국의 주 5일제 도입은 늦은 편이다. 선진국에 비해 산업화와 경제 발전이 뒤처진 상황과 맞물려 있다. ‘반공일’에서 ‘놀토’로 바뀐 주 5일제(주 40시간)의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은 2003년부터다. 이후 금융회사, 정부 투자기관부터 시작해 2011년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됐다.
선진국과 근로 시간 비교 어려워
새 정부 출범 후 주 4.5일제를 둘러싼 논의가 불붙고 있다. 대선 공약인 데다 금융산업 노조, 현대자동차 노조 등이 거세가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방향은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제다. 참여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해 단계적 확산을 유도하겠다지만, 경영계는 기업 부담이 늘어난다고 우려한다.
가장 큰 쟁점은 노동시간 단축의 근거를 둘러싼 시각차다. 노동계와 정부는 선진국보다 노동시간이 길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경제협력개발기구(CECO)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근로자당 연평균 근로 시간은 1865시간으로 통계에 인용된 36개 국가 중 6위다. 평균 근로 시간(1650시간)보다 길다. 근로 시간이 가장 적은 국가는 독일(1331시간)이다. 프랑스(1491시간), 일본(1617시간) 등도 OECD 평균을 밑돈다. 그러나 이 통계는 단서 조항이 달려 있다. 데이터 기준이 달라 근로 시간을 국가별로 비교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명시돼 있다. 미국(1796시간)도 한국의 다음 순위에 올라 있다. 주 4.5일제 도입 근거의 첫 단추부터 난센스일 수 있다는 얘기다.
생산성 더 떨어질 수도
현재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주 4.5일제를 시행할 만한 수준인지도 따져봐야 할 대목이다. 2023년 기준 근로 시간당 국내총생산(GDP) 지표는 한국이 51달러로 26위에 그친다. OECD 평균(64.3달러)보다 한참 아래다. 노동생산성 9위인 독일의 업무 밀도는 한국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근무시간에 신문을 보는 것은 물론 사적인 전화도 불가능하다. 관청 민원실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개방한다. 출근 전이나 퇴근 후에만 이용하라는 것이다. 독일의 노동시간이 짧은 건 이런 전제가 깔려 있다.
주 4.5일제는 중소기업에 특히 치명적이다. 납기를 맞추려면 법정근로시간 외에 연장근로(주 12시간)로도 빠듯한 곳이 대다수다.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가 많다는 점도 숙제다. 근로 시간이 줄면 숙련 기회가 줄어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외국인 취업자 비중은 지난해 기준 97.3%에 이른다.
포드는 제조 혁명을 가져온 포디즘을 바탕으로 임금 삭감 없는 주 5일제를 관철했다. 국내 기업의 처지는 다르다. 대기업이 주 4.5일제에 따른 비용 증가분을 협력업체에 전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제는 ‘둥근 사각형’처럼 형용 모순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주 4.5일제 시행에 앞서 여러 논란에 대한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