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지난달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동) 지역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해제했다. 결과는 뻔했다. 서울 아파트값이 들썩이기 시작하더니, 이달 들어 강남 3구의 아파트 매매 가격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초 이후 7년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이 여파로 가계부채 문제까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달 주택담보대출만 5조원 급증해 전달(3조2000억원)보다 증가폭이 커졌다. 금융권 안팎에서 심상치 않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타이밍 잘못 잡은 정책은 필패
물론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은 일부 지역 주민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언젠가 없어져야 할 규제이긴 하다. 문제는 엉뚱한 진단과 아쉬운 정책 타이밍이다. 우선 지방 건설 경기 악화로 부동산 시장이 흔들리고 있는데, 난데없이 잠잠하던 서울 지역 규제를 푼 게 화근이 됐다. 서울시와 국토부의 정책 조율도 매끄럽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더 큰 문제는 해제 시기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내내 은행의 대출 금리와 조건까지 압박해가며 수도권 가계대출 폭증세를 가까스로 눌렀다. 하지만 이번 규제 해제는 ‘빚을 내 아파트를 사야 하나’ 고민해온 이들의 조급함을 들쑤신 불쏘시개가 됐다. 화들짝 놀란 정부와 서울시가 19일 강남·서초·송파·용산구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확대·재지정하며 한 달 만에 다시 진화에 나섰지만, 버스는 떠난 상태다.
작년에도 ‘헛발질’이 있었다. 규제 도입 시기를 미룬 것이다. 정부는 가계대출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작년 7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 시행을 앞두고 돌연 적용 시기를 한 달 연기했다.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타이밍이 안 좋았다. 홈쇼핑의 ‘마감 임박’ 문구와 같은 역할을 했다. 대출자를 은행으로 대거 끌어들이며 ‘영끌 빚투’(영혼까지 끌어모아 빚내서 투자)를 부추겼다. 그 결과 작년 8월 한 달에만 가계대출 잔액이 10조원 가까이 폭증했다.
골든타임 잡는 건 당국자의 몫
타이밍을 잘못 잡은 정책은 늘 역습과 맞닥뜨린다. 정부가 2023년부터 변동금리 대신 고정금리 대출 확대를 밀어붙인 게 대표적 사례다. 작년부터 금리가 하락했지만, 과거 고정금리로 대출받은 수많은 이들이 아직도 고금리 ‘이자 족쇄’에 묶여 있다. 문제는 고정금리 대출을 받은 차주의 상대적 부담이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올해 금리가 더 내려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정책은 늘 골든타임과 맞물려야 한다. 갈팡질팡 눈치만 보면 때를 놓치기 십상이다. 한국은행은 물가 상승률이 둔화한 작년 7~8월 기준금리를 미리 낮췄어야 했다는 비판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기(失期) 논란에 휩싸인 채 두고두고 시장의 원망을 사고 있다.
난세(亂世)다. 경기 둔화에 계엄 사태, 탄핵 정국 등 정치적 불확실이 엎친 데다 도널드 트럼프발 관세 폭탄 우려까지 덮쳤다. 나라 경제와 금융시스템, 외교·안보, 민생 모두 엉망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정책 목표와 수단이 적합한지, 대상에 미칠 영향이 어떨지 더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 정확한 타이밍을 잡아야 한다. 이를 위한 고뇌는 늘 당국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