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컨데나스트 인터내셔널 럭셔리 콘퍼런스’ 현장. 사회자 수지 멩키스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K팝, K아트도 있는데 K럭셔리라고 안 될 이유가 없다. 한국은 충분한 기술력을 갖췄다.” 패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제조업자개발생산(ODM) 산업은 발달했으나 이렇다 할 글로벌 브랜드가 없는 한국 패션산업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한 것이었다. 콘퍼런스는 세계 명품업계의 주요 인사가 모여 현안을 논의하는 행사였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총괄회장 등 명품 패션업계 최고경영자(CEO), 디자이너, 오피니언 리더 등이 참석했다. 멩키스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모델인 애나 윈터 미국 보그 편집장과 함께 세계 패션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패션 저널리스트다.
한국 패션산업은 오랫동안 제조업이었다. 패션산업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있다. 동대문이다. 1960년대 수출 주도형 섬유산업 육성 정책에 힘입어 국내 의류 제조업은 급팽창했다. 당시 의류 제조와 도소매상이 밀집한 동대문 평화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1990년대엔 ‘두타’ ‘밀리오레’ 등 패션 쇼핑몰이 들어섰다. 외환위기 직후 문을 연 밀리오레는 세간의 우려에도 흥행에 성공했다. 전국의 젊은이들이 옷을 사기 위해 몰려들었다. 2000년대 들어선 온라인 쇼핑몰을 열고 동대문에서 물건을 떼다 ‘택갈이’를 해 판매하는 사업이 확산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동대문은 쇠락하기 시작했다. 독창적인 디자인·브랜드 역량 없이 의류를 떼다 파는 것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왔다.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가 뜨고 최근 중국 e커머스마저 침투하며 동대문은 혹독한 침체기를 맞았다. 상인들이 떠나고 공실률이 치솟았다. 유동 인구는 70~80% 급감했다.
한때 한국의 패션 메카인 동대문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이곳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일고 있다. 빈 상가를 패션 공유 오피스가 채우기 시작했다. K패션 브랜드를 꿈꾸며 이곳에 둥지를 트는 젊은 신진 디자이너가 늘고 있다. 이들은 아직 남아 있는 동대문 인프라를 활용해 트렌드 변화에 맞춰 발 빠르게 시제품을 디자인한 뒤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생산하고 무신사 등 패션 플랫폼에 입점해 판매한다.
소비 패턴과 유통 채널 변화가 이들이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의류의 주 소비층인 요즘 젊은이들은 온라인 패션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개성 있고 독창적인 스몰 브랜드 의류를 선호한다. K웨이브는 수출길을 열고 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패션 브랜드 ‘마뗑킴’이 있다. 지난해 해외 진출을 본격화한 마뗑킴은 국내 패션시장 침체에도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쇠락하던 동대문이 젊은 디자이너의 창의적 공간으로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동대문의 변화는 한국 패션산업이 전환점을 돌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제조에서 콘텐츠,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산업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이곳에서 멩키스가 언급한 글로벌 K패션, K럭셔리 브랜드가 탄생하기를, K팝과 K뷰티에 이어 K패션도 세계를 매혹하는 새로운 물결이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