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 구조 예측 넘어 '약 설계'…AI 신약개발 임상 본격 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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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으로 만든 신약이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효능을 검증받는 단계에 들어섰다.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데 그치던 AI가 이제는 후보물질을 직접 설계하고 약효를 보일 가능성까지 계산해 임상시험에 올리고 있다. 이렇게 되면 10년 넘게 걸리던 신약 개발 기간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 그동안 정복하지 못했던 난치병에도 돌파구가 될 것으로 평가되면서 글로벌 자본이 쏠리고 있다.

알츠하이머 등 치료제도 설계 가능

신약개발은 본래 표적 발굴, 후보물질 도출, 동물실험(전임상), 사람 대상 임상시험 1·2·3상, 시판 허가로 이어지는 긴 여정이다. 신약 하나가 상용화되기까지 평균 10년이 걸리고 약 26억달러(약 3조6000억원)의 돈이 든다. 후보물질 1만 개 중 임상에 진입하는 것은 10여 개뿐이고 최종 허가까지 받는 것은 한 개에도 못 미친다.

홍콩 기반 인공지능(AI) 신약개발 기업 인실리코메디슨의 실험실에서 로봇이 연구용 시약을 옮기고 있다.  인실리코메디슨 제공

홍콩 기반 인공지능(AI) 신약개발 기업 인실리코메디슨의 실험실에서 로봇이 연구용 시약을 옮기고 있다. 인실리코메디슨 제공

AI는 신약개발 각 단계에 걸리는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첫 관문인 후보물질 발굴은 2020년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2 출시 이후 수개월 걸리던 작업이 며칠 단위로 줄었다. 최근에는 한 발 더 나아가 약물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용할지와 임상 실패 가능성까지 한꺼번에 계산할 수 있게 됐다.

후보물질을 인공적으로 합성한 후 동물실험으로 일일이 검증하던 기존 작업 또한 AI 기반 시뮬레이션으로 압축하면서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덕분에 신약개발 평균 기간은 10여 년에서 4~6년 수준으로 절반 가량 단축될 전망이다. AI 적용 영역도 저분자 화합물 중심에서 항체와 바이오의약품 같은 복잡한 생물학적 치료제 설계로 확장되는 추세다.

성공률까지 AI가 사람을 압도하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전통 방식으로 개발된 신약 후보물질의 임상 1상 성공률이 평균 52% 수준인 데 비해 AI가 설계한 후보물질은 80~90%에 달한다. 사람이 일일이 합성·검증하던 시절에는 절반이 첫 관문에서 탈락했지만 AI 설계 약물은 십중팔구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셈이다.

AI는 알츠하이머병·파킨슨병이나 희귀 유전질환처럼 수십 년간 치료제 개발이 정체됐던 난치병 영역에서도 새로운 돌파구를 열 것으로 보인다. 난치병은 약물이 결합할 자리가 좁거나 치료 표적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AI는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실시간으로 예측해 숨어 있는 치료 표적을 찾아내고 그 자리에 꼭 맞는 약물 분자까지 설계할 수 있다. 사람이 평생 실험해도 찾지 못하던 영역을 단 며칠 만에 탐색하는 것이다.

4개 기업에 4개월 간 37억달러 유입

투자금도 AI로 몰리고 있다. 아직 임상에도 들어가지 못한 초기 단계 후보물질에까지 자본이 빠르게 유입되는 흐름은 AI 신약개발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구글 딥마인드에서 분사한 아이소모픽랩스가 지난 12일(현지시간) 시리즈B에서 21억달러(약 2조9400억원)를 유치했다고 발표한 것은 상징적이다. 미국 벤처캐피털 스라이브캐피털이 주관 투자자로 나섰고 알파벳, GV, 싱가포르 테마섹, 영국 소버린AI펀드 등이 참여했다.

아이소모픽랩스는 핵심 신약개발 플랫폼 ‘IsoDDE’를 기반으로 일라이릴리, 노바티스, 존슨앤드존슨(J&J) 등 글로벌 제약사 세 곳과 단계별 성과금(마일스톤)을 합쳐 약 30억달러 규모의 신약 발굴(디스커버리) 협력 계약도 체결했다.

뿐만 아니라 올 3월에는 창업 3년 차 미국 에아렌딜랩스가 7억8700만달러(약 1조1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유치했고, 2월에는 AI 신약 기업 에이콘 테라퓨틱스(3억8100만달러)와 제너레이트바이오메디슨(4억달러)이 잇따라 기업공개(IPO)에 성공했다. 이들 4곳에 유입된 자금만 합쳐도 36억6800만달러(약 5조2000억원) 규모다.

시장 규모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AI 신약개발 시장은 2025년 23억5000만달러(약 3조3000억원)에서 2033년 137억7000만달러(약 19조3000억원) 규모로 약 6배 성장할 전망이다.

AI가 설계한 신약 가운데 최종 규제 승인을 받은 사례는 아직 없다. 가장 앞선 후보는 홍콩 기반 인실리코메디슨이 개발 중인 특발성 폐섬유증(IPF) 치료제 ‘렌토서팁’이다. 인실리코는 생성형 AI로 발굴한 이 약물이 임상 2a상에서 12주 만에 기존 시판 치료제를 능가하는 폐활량 개선 효과를 보였다고 2024년 발표했다. 현재 신약 승인 전 마지막 단계인 임상 3상에 진입한 상태다. 알렉스 자보론코브 인실리코메디슨 대표는 “전통 신약개발에서는 불가능했던 약물 개발도 AI로 인해 가능해졌다”며 “1~2년 안에 AI로 만든 신약이 시장에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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