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상법 개정이 몰고 올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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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상법 개정이 몰고 올 변화

우여곡절 끝에 상법 개정안이 지난 3일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전자주주총회를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 합산을 3%로 제한하며, 사외이사의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다만 이들 조항은 시행이 적어도 1년 이상 늦춰졌다.

이번 상법 개정의 핵심은 공포 즉시 시행되는 382조 3항 이사의 충실 의무에 대한 조항이다. 기존 상법에서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회사’로 한정돼 있었지만 본 개정안은 의무의 대상을 ‘회사 및 주주’로 확대했다. 나아가 이사의 직무 수행 시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새로운 문구가 추가됐다. 1998년 신설된 382조 3항이 27년 만에 개정되면서 앞으로 기업과 자본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주식회사 제도는 서구 경제가 전 세계를 주도하도록 이끈 가장 근본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주식회사의 주인이 주주라는 데는 이의가 없지만 주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이사회의 충실 의무는 사실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고 많은 논란과 변화를 거치며 각국의 문화적, 제도적 차이에 따라 법령과 판례로 확립돼 왔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상법에서는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로 한정했다. 경제학적으로 이를 해석하면 이사들은 회사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자연인이 아닌 법인 회사의 ‘목적 함수’가 무엇인지는 어디에도 명확하게 정의돼 있지 않다. 필자가 전공한 경제학에서는 회사의 가치, 좀 더 구체적으로는 회사의 주인인 주주의 부를 극대화하는 것을 ‘목적 함수’로 분석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회사가 법인 등록한 주의 상법을 따르는데 대부분 대기업이 법인 등록한 델라웨어주의 법과 판례를 통해 이사회의 주주에 대한 선관주의 의무를 명확히 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이사회의 의사결정이 회사에 명확하고 심각한 손실을 가져오지 않는 한 법적 문제가 야기되지 않았다. 여기에 경영 판단의 원칙까지 결합돼 이사회의 의사결정이 소송 대상이 되거나 이사들이 책임을 지는 사례는 매우 드물게 발생했다.

최근 몇 년간 논란이 된 물적분할 후 자회사의 중복 상장, 자사주의 마법이라고 불린 인적 분할 과정에서 자사주에 종속기업 주식 배정, 지배주주에 유리한 합병 가액 산정 등은 명백히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반 주주의 이익을 희생시켰음에도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는 전혀 위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상법 개정은 바로 이러한 부조리를 바로 잡겠다는 취지다.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켰다는 사실은 이에 대한 공감대가 넓다는 것을 입증한다.

상법 개정으로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가 하루아침에 개선되고 기업가치가 제고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선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무엇이며 어떤 범위로 적용되는지 확립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위 법령에서 그 기준을 제시하고 자본시장법 등 관련 법과 규제의 추가 개정이 필요하다.

기업들은 이번 상법 개정으로 소송이 남발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으나 현재와 같이 주주 대표 소송을 지극히 어렵게 만드는 것이 이에 대한 해결책은 아니다. 이사회의 의사결정에 대해 피해 주주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 제도가 개선되고 법원 판결이 현재보다 훨씬 신속하게 이뤄져 주주와 기업 모두에 소송 장기화로 인한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현재는 소송의 원고인 피해 주주들에게 모든 입증 책임이 있는데 선진국의 사례와 같이 소송 개시와 더불어 양측이 가진 증거를 모두 공개하는 증거개시제도가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

이번 상법 개정의 대상이 경영진이 아니라 이사회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기업의 이사회는 지금부터 자신들의 의사결정이 주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예전에는 법적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결정들이 현행 상법하에는 더 이상 적법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상법 개정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후속 제도와 규제 보완뿐만 아니라 이사회, 기업, 주주들의 인식과 행동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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