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진정한 왕이고 어른인가[정덕현의 그 영화 이 대사]〈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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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셨어.”

―장항준 ‘왕과 사는 남자’

잘못된 정치는 후대에 어떤 비극을 불러올까. 폐위돼 청령포에 유배된 후 끝내 사사된 단종은 아마도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부왕이 일찍 승하해 겨우 열 살에 보위에 올랐지만 즉위 1년 만에 숙부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잃었고, 결국 유배돼 고작 16세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비극의 청춘이다.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는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과 그 마지막을 함께했던 엄흥도의 일화를 다룬 작품이다.

이미 역사를 통해 알고 있듯이 이 이야기는 비극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곳 청령포에서 단종이 지냈던 마지막 나날들을 빛나는 시간들로 채워 넣는다. 궁에서 사육신들이 고신을 당하고 죽어 나가는 걸 보며 밥 한술 뜨지 않던 단종이 청령포에 유배돼 그곳의 순박한 사람들과 어우러져 밥을 나눠 먹는 장면은 유쾌하면서도 뭉클하다.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셨어.” 소박하지만 정성껏 밥상을 챙겨주는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반색하고, 단종은 기꺼이 밥상을 마을 사람들과 나눈다. 밥상을 백성과 나누는 그에게서 진정한 왕의 풍모가 느껴진다.

민초들을 배부르게 해주는 것이 정치의 근본 아니던가. 백성은 안중에도 없고 권력으로 배 채운 수양대군을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왕으로 여기질 않는다. 세조를 수양대군으로 부르고, 노산군을 대신 단종으로 부르는 건 그래서다. 이 영화는 누가 진정한 시대의 어른인가를 묻는 작품이기도 하다. 단종을 사사한 뒤 시신을 강물에 버리고 수습하는 자는 삼대를 멸한다고 엄포를 내렸던 수양대군과, 그럼에도 끝내 시신을 수습해 훗날 충의의 상징이 된 엄흥도. 누가 진정한 어른일까. 어른들의 권력 투쟁에 죽음으로 내몰린 단종의 이야기가 그저 옛이야기처럼 보이질 않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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