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파는 ‘뇌의 언어’… 뇌 데이터 축적-판독으로 뇌 건강 지키기[이진형의 뇌, 우리 속의 우주]

3 hours ago 1

과거 뇌 기능 측정-판독 어려워
기술 발전에 뇌파검사 활용 늘어
뇌파는 1000억 개 신경세포 신호
델타-세타-알파-베타-감마파 등
각 주파수 증감 특정 증상과 연관
뇌 데이터로 뇌건강 관리 가능해

《내 뇌는 잘 동작하고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 가져볼 만한 질문이다.
잠이 잘 안 오기도 하고,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고, 때로는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면 마음이 매우 불안해진다.
지금까지는 이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건강검진센터에 가서 설문에 응답을 작성해 보지만 이는 뇌의 기능을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다.》

더 많은 것을 알아보고 싶어 뇌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하거나 초음파를 보면 종양이나 막힌 혈관 등을 찾을 순 있지만 뇌 신경망의 기능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즉, 그동안 내 뇌의 기능을 직접 측정하고 알아볼 수 있는 검진은 받을 수 없었던 셈이다.

내 뇌가 잘 동작하는지 알려면 뇌의 기능을 직접 측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뇌의 기능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뇌 내 신경세포들이 전기신호를 주고받는 기능을 측정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뇌파를 찍는 것이다. 하지만 뇌파는 세 가지 이유로 뇌 건강을 관리하는 데 쓰이지 못했다. 첫째는 뇌파를 찍기 위해 전극을 머리에 붙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고, 둘째는 뇌파 측정에 너무나 많은 잡음이 있어서 깨끗한 신호를 측정하기가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뇌파의 판독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뇌파를 찍어도 판독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사용이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기술 개발로 이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면서 뇌파를 아주 쉽고 널리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뇌는 1000억 개로 추정되는 많은 신경세포로 이뤄져 있다. 뇌 안의 통신은 여러 신경세포가 함께 협력해 신호를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파동의 형태로 뇌의 전기신호를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뇌의 파동이 뇌의 여러 기능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선 그동안 연구가 많이 이뤄졌다. 나아가 뇌파를 쉽게 측정하고 판독할 수 있도록 기술이 개발되면서 연구실에서만 주로 사용되던 뇌파 측정을 많은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뇌파는 통상적으로 주파수별로 구분돼 각 역할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다. 여기서 주파수 영역은 △델타파 △세타파 △알파파 △베타파 △감마파 등 크게 다섯 가지인데, 이들 주파수의 증감은 특정 증상과 연관성을 띠고 있다.

우선 델타파는 1∼4Hz의 주파수 영역에 해당하는 뇌파의 신호를 말한다. 이는 ‘1초에 한 번에서 네 번까지 반복되는 신호’라는 의미다. 깨어 있는 동안 델타파의 상대적인 증가는 뇌전증 위험과 수면 부족, 인지능력 저하의 위험을 나타낼 수 있고 경도인지장애, 알츠하이머, 혈관성 치매 등과도 관련이 있다. 반면 델타파의 상대적인 감소는 뇌의 노화와 연관성이 있다.

세타파는 4∼8Hz의 주파수 영역에 해당하는 신호다. 깨어 있는 동안 세타파의 상대적 증가는 주의력 감소와 초기 알츠하이머, 인지능력 감소, 사회 불안장애와 관련이 있다. 반면 세타파가 상대적으로 감소할 경우 뛰어난 인지능력 및 기억력과 관계가 있다는 연구가 있다. 알파파는 8∼12Hz의 주파수 영역에 해당하는 뇌파 신호다. 깨어 있는 동안 알파파의 상대적인 증가는 강한 집중력이나 우수한 기억력과 관계가 있다. 반면 알파파의 상대적인 감소는 노화, 인지능력 저하, 경도인지장애, 알츠하이머, 혈관성 치매,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

베타파는 12∼30Hz의 주파수 영역에 해당하는 뇌파 신호다. 깨어 있는 동안 베타파의 상대적인 증가는 불면증 환자나 알코올의존증 환자에게서 나타난다. 반면 베타파의 상대적인 감소는 알츠하이머와 관계가 있다.

감마파는 30Hz 이상의 주파수 영역에 해당하는 뇌파다. 감마파의 상대적인 증가는 강한 집중력, 우수한 기억력과 관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마파의 상대적 감소는 알츠하이머, 정신분열증 등에서 관찰된다.

이렇게 뇌파의 파장별 분석과 함께 여러 가지 뇌질환으로 인한 뇌의 손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뇌전증 신호들을 인공지능(AI)을 통해 찾아낸다면 내 뇌가 정상적으로 동작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다.

뇌의 기능과 건강 상태를 지속적으로 측정해 나의 뇌 데이터를 축적해 나가다 보면 내 뇌의 기능이 좋아지고 있는지, 아니면 나빠지고 있는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지 등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뇌의 문제를 초기에 빨리 알아차리고 적절하게 대응해 큰 질환으로 발전되는 것을 막는 중요한 초석이 될 것이다. 내 뇌를 내 뇌 데이터로 지킬 수 있는 미래가 기대된다.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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