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사건이 끝난 뒤에도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피해 학생은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다”고 말하고, 가해 학생은 “처음부터 결론을 정해 놓고 조사했다”고 주장한다. 같은 조사 결과를 두고 양측 모두 억울함을 호소하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흔히 처분 수위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갈등이 이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조사 과정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학폭 전담조사관 제도는 교사의 조사 부담을 줄이고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조사를 통해 공정성을 높이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조사관의 역량 편차와 배정 방식, 이해 충돌 가능성 등을 둘러싼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전담조사관은 퇴직 교원과 전직 경찰관, 청소년 상담·보호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학교 문화에 대한 이해, 사실관계 확인과 증거 분석, 학생 심리와 회복 등에서 서로 다른 강점을 지닌다. 이는 장점이지만 조사 품질의 일관성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조사관들이 동일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조사하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일이다. 학폭 조사는 단순히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행정 절차가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공동체가 정의를 실현하는 방식을 처음 경험하는 과정이다. 제 이야기를 충분히 말할 기회를 얻었는지, 상대방과 같은 기준을 적용받았는지, 조사관이 편견 없이 자신을 대했는지는 처분 결과만큼 중요하다. 이를 ‘절차적 정의’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라도 절차가 공정했다고 믿으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조사관 수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조사 품질을 표준화해야 한다. 사건 유형에 맞는 조사관 배정, 체계적인 교육과 사례 중심 연수, 조사보고서에 대한 정기적인 품질 평가, 이해 충돌을 막는 장치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아이들은 학교를 판결문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줬는지, 같은 기준으로 존중받았는지를 기억한다. 학폭 조사는 학교가 교육기관으로서 신뢰를 증명하는 첫 번째 수업이어야 한다.※ 동아일보는 독자투고를 받고 있습니다. 각 분야 현안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이름, 소속, 주소, 휴대전화 번호 등 연락처와 함께 e메일(opinion@donga.com)이나 팩스(02-2020-1299)로 보내주십시오. 원고가 채택되신 분께는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합니다. 내 생각은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글로벌 이슈 A Farm Show-창농·귀농 고향사랑 박람회 현장...
[내 생각은/류영철]학폭 조사 신뢰, 조사관 역량 표준화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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