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의존증 발병 양상이 바뀌고 있다. 수십년간 국민을 괴롭혀온 이른바 '알코올 중독' (알코올 사용장애)의 발생 빈도와 심각도는 다소 완화되는 추세로 나타난다. 코로나19 이후 강해진 혼술문화, 여성의 사회활동·경제활동 참여 확대로 인한 여성 알코올 의존 증가 등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술자리의 빈도가 줄어들면서 알코올 의존증이 다소 완화되고 있다. 이제 웬만한 모임에서는 2차, 3차를 가는 일이 흔하지 않다. 저녁 9시 이전에 대부분의 모임이 파하는 것을 보면 사회적 관계맺기 양상 변화가 음주문화 변화와 동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디지털 신세대를 중심으로 스마트폰 과의존, 게임 과의존, 인터넷 도박 의존증 등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23년 기준 한국 청소년의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 비율은 무려 열 명 중 네 명에 달한다. 단순히 사용 시간이 긴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의존증의 전형적인 특성인 금단증상, 내성강화, 일상생활 장애 등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 문제다. 학업과 가족생활, 친구 관계 등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스마트폰 과의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 부족한 것을 보면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앞으로 이 문제는 더 심각해지면서 어린아이, 청소년의 발달 과정과 학업에 영향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인 스마트폰 과의존과 청소년 과의존이 결합해 가족간 소통 장애와 불화, 수면 부족의 확산, 소통 결여로 인한 세대간 분리 현상 강화 등 엄청난 문제들을 파생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PC 기반 온라인 게임과 스마트폰 기반 게임에 과의존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세계보건기구는 2019년에 게임과의존을 질병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가장 심각한 것은 미래세대라고 할 수 있는 청소년과 영유아의 과의존 정도가 매우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초등학생 중에서도 게임에 빠져 정상적인 학업이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 관계에서 분리되어 고립되는 문제도 심각하다. 개인의 사회화가 진행되려면 부모, 친구, 동료와의 소통이 충분히 있어야 하는데 소통 자체를 포기하고 게임에만 과몰입하게 되면 관계 형성 실패로 인해 과의존은 더욱 심각해져 버리고 만다. 필자는 게임산업의 진흥에는 적극 찬성하지만, 게임 과의존으로 인한 문제에 대해 팔짱을 끼고 있는 관련 업계, 교육계, 그리고 정부와 국회의 책임 방기는 앞으로 커다란 재난을 초래할 것이라고 오래 전부터 경고하고 있다.
불법 온라인도박 중독도 심각하다. 불법도박이 불법 도박장과 같은 물리적 공간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과 PC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접근 가능해진 것이 급격한 확산의 기폭제가 되어버렸다. 소액, 단기 도박에서 시작해 부모의 신용카드 한도를 쉽게 넘어 가정경제 파괴에까지 이르게 되는 청소년·어린이의 불법도박은 우리나라 가정경제를 좀먹는 숨은 테러리스트가 되어 버린지 오래다.
스마트폰 시대에 심각해지고 있는 다양한 과의존 양상에 대처하지 못하는 우리의 의무교육과 성인 재교육 체계의 문제는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체벌이 금지된 이후에 우리 학생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명확한 전달을 할 수 있는 다양한 훈육기법이 정착하지 못했다. 다양한 과의존 현상을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부모와 학생의 반발이 두려워 과의존에 대해 눈치를 봐야 하는 교육 현장의 문화도 문제다. 과의존은 절제의 부족을 의미하며, 절제가 부족해진 것은 학교, 가족과 같은 사회구성의 단위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어른들 스스로부터 스마트폰, 게임 과의존의 늪에서 빠져 나와야 아이들도 따른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