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거짓진술, 재판방해 아니면 無불이익
제도적으로 거짓말에 관대한 한국 사회
지도자는 평균 한국인보다 더 정직할 의무
정치 개혁은 허위와 거짓말 저항부터 시작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심리 도중 국회에서 끌어내라고 지시한 대상이 의원인지, 인원인지 모호하게 말하다가 ‘탄핵 공작설’을 꺼냈다. 혼자만 아는 진실은 깊이 숨겼다. 윤상현 의원이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인 줄 몰랐다고 답변했다가, 명태균의 통화녹음 공개로 체면을 구겼다. 몇 년 전 어느 대법원장이 정파적 발언을 부인하다가 음성녹음이 공개됐던 일과 판박이다. 김건희 여사가 했던 “당선되면 내조만 하겠다”는 약속은 실소를 낳았다. 국면 탈출용이란 걸 윤 대통령 부부가 제일 잘 알았을 것이다.
차기 대통령에 가까이 갔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선 유죄, 2심에선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가 대장동과 백현동 파문 초기 “마치 골프를 친 것처럼 (당시 야당이) 사진을 공개했다” “국토부가 협박했다” 등의 발언을 한 게 거짓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번지며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허위 발언 여부는 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이 나올 것이다.
궁박한 처지에 내놓는 거짓말은 우리네 유권자라고 무관하지는 않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인류의 조상은 아담과 이브, 그들의 두 아들 카인과 아벨이다. 아담과 이브, 카인이 하나님에게 거짓을 말했다. 3000년쯤 전 유대인들도 거짓말은 떼어낼 수 없는 인간 본성으로 봤던 것이겠지만, 정치인의 공적 허위에 맞서는 과제를 미룰 이유는 아니다.탄핵 정국에 가려졌지만, 검찰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3월 추가로 기소한 일이 있다. 이 사건은 우리가 제도적으로 거짓말에 관대하다는 걸 일깨워 줬다. 구속 중인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이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방북 구상과 관련해 800만 달러를 북한에 제공하도록 한 혐의 등으로 2심까지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경기도지사에게 보고해 가며 진행했다고 진술했다가 1심 재판이 끝날 무렵 번복했다. 수원지검의 ‘연어 술 파티’ 회유 주장이 이때 나왔다. 대법원 판단이 남았지만 일단 1심, 2심 재판부는 이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술 파티 주장은 배척됐지만, 이 전 부지사는 손해 본 게 없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의 법정 진술이 거짓일지라도 재판 방해에 이르지 않는다면 불이익을 주지 않도록 돼 있다. 제3자인 증인의 위증은 처벌하지만, 자기 방어 땐 면책된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 사안을 국회로 가져가 청문회를 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 전 부지사는 법정에서처럼 ‘연어와 소주로 회유당했다’고 주장했다. 법정 발언은 처벌할 수 없던 검찰은 선서를 해 증인이 된 이 전 부지사를 위증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판사들은 “형사 법정은 거짓말 경연장”이란 말을 종종 한다. 그럼에도 감옥 가는 걸 피하려는 자기방어 본능은 처벌할 수 없다는 인지상정과 거짓 진술이라는 이유로 제약을 두면 ‘자백을 강요하는 셈’이라는 논리로 이 법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선 다르다. 1990년대 말 빌 클린턴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 때 드러난 대로다. 클린턴은 연방대배심 앞에서 “성적(性的)인 관계는 없었다”고 말했다가 위증과 사법 방해죄로 처벌을 받을 뻔했고, 실제로 미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됐다. 탄핵 사유는 인턴 직원과 맺은 성적 접촉이 아니라 거짓말이었다. 미국에선 형사 피고인도 증인선서를 한 뒤라야 법정에서 진술이 허용된다. 위증 처벌을 감수할 때 자기방어를 허용한다는 의미다. 거짓을 단죄하는 이런 분위기 속에 미국에서는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은 더 모욕적으로 여겨진다. 우리 형사소송법을 당장 바꾸자는 말은 꺼내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범법자가 늘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공적 영역에서 정직함에 가치를 더 두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곳곳에서 목격되는 부조리를 보면 더욱 그렇다. 정치인들의 거짓이 반복되지만, 정치인 가운데 이 문제를 개탄하는 일이 드물다.조기 대선이라도 열린다면 오늘의 시대정신은 거짓과의 싸움이다. 유권자는 이 점에 더 천착해야 새 대통령이 취임한 뒤 후회를 줄일 수 있다. 정치 리더들에게 조선시대 어느 선비처럼 턱 밑에 칼을 놓고, 허리춤에 방울 다는 자기경계를 주문하는 게 아니다. 평균적인 한국인보다 더 정직해 달라는 요구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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