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 몰린 與, 멀리하던 전광훈 손잡는 패착
선거부정 믿는 30% 위하느라 70%가 등져
광우병-사드 개탄했던 與, 민주당 뒤따르나
손해 각오한 與 후보 나와야 정치 달라진다
집권 여당을 향해 거대한 파도가 덮쳐 오고 있다. 2030 남성 지지가 늘었다지만, 정치에 무관심하던 중도층이 이 황당한 부정선거론에 여당이 끌려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탄핵 반대”와 “이재명 OUT” 구호에 이끌려 전광훈 세력과 손잡았다. ‘거리의 우파’가 펴는 부정선거 주장에 흔쾌히 동의할 수도 없으면서 한배를 타버린 것이다. 그 바람에 국민의힘이 애썼던 전광훈 세력과의 거리 두기는 없던 일이 됐다. 선출된 최고위원이 전광훈 집회에 가서 문제적 발언을 했다고 징계했던 게 불과 2년 전이다.
여당은 욕을 덜 먹을 논리를 찾아냈다. “부정선거라 단언은 못 한다. 하지만 학식 있고, 괜찮은 분들까지 부정선거를 강력하게 주장하니, 어떻게든 조사는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기 목소리는 빼고, 남의 의견을 빌리는 형식이다. 비대위원장도, 대구시장도 딱 이렇게 표현했다. 30%가 부정선거를 의심한다는 여론조사가 있다. 바꿔 말하면 70%는 이런 주장을 황당하게 여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정선거 절연이 필요한 것은 표 계산 때문만이 아니다. 여의도 정치에 비과학, 반지성은 발붙일 곳이 없어야 한다. 쉬운 일을 푸는 데 정치인은 필요 없다고 말한 게 영국 처칠이다. 그의 말대로 정치인은 어려울수록 문제를 풀어낼 책무가 있다. “이런 의견이 있으니 알아는 보자” 정도라면 정치와 지도자가 왜 필요한가. 현재 여당은 선거 시스템 특별점검법 발의를 진행 중이다. 법 통과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강성 지지층과 보조를 맞추려는 고육책이다.지난 20년 동안 여의도 정치에 비과학적 주장이 더러 있었다. 2008년 광우병, 2016년 사드, 2023년 후쿠시마 오염수 사안을 봐도 그건 좌파 단체가 주장하고, 민주당이 2인 3각으로 이슈를 키웠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15년 뒤엔 죽는다던 주장은 17년이 흐른 지금 잊혀졌다. 사드 레이더 전자파에 새들과 참외가 튀겨진다며 경북 성주군 어르신들 앞에서 춤추며 선동했던 의원들은 온데간데없다. 일본 원전이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을 때 “일본의 핵 테러” 때문에 우리 바다에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민주당이 지난 1년 동안 우리 해안 오염을 진지하게 거론했다는 뉴스를 거의 못 봤다.
이제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경로를 따라가고, 거꾸로 민주당은 여당의 혼선을 즐기는 처지가 됐다. 요즘처럼 언론의 취재로 부정선거 의혹이 하나둘 설명된다면 부정선거 지지 여론은 20%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 국민의힘은 이 사안이 광우병, 사드처럼 흐지부지되면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그 길을 바라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런 비상식적 선거부정 주장에 기질적으로나, 사명감 때문에 외면할 수 없다고 나서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지금 국민의힘의 문제는 부정선거론을 품은 것보다 황당한 주장에 분명히 선을 긋고 나서는 리더가 없다는 점이다. 김문수 홍준표 오세훈 한동훈 같은 잠재 대선 후보들은 아직까지는 당의 모범답안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쯤 되는 사안이라면 당은 공식 견해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비공식적으로라도 치열하게 조사를 벌여야 한다. 그런 뒤 부정선거를 전면에 내걸고 다툴 만하다고 여긴다면 싸워야 한다. 부정선거 판단이 안 선다면 냉정하게 선을 긋길 바란다. 부정선거라는 게 정치적 지향점에 따라 없던 게 생기고 그럴 게 아니지 않나.현실 정치인들로선 쉬운 길은 아니다. 당 경선을 거쳐 대선 후보가 되려면 ‘극렬 우파’의 뭉치 표가 필요하다. 하지만 계엄과 탄핵으로 지친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나서야 할 때다. 10% 안팎의 강경 지지층이 똘똘 뭉쳐 당을 인질로 삼으려 해선 안 된다. 마찬가지로 이들의 황당함을 알면서도 활용하려는 정치인의 태도는 시대착오적이다. 낡은 정치와 결별하려는 그 정치인은 당장의 경선 때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선거가 이번 한 번뿐인가. 그 과정은 정교하게 기록될 것이고, 유권자들은 그의 도전과 용기를 반드시 기억할 것이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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