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5월은 임진왜란 때
정치세력은 권력다툼, 선조는 明 피신 시도
왜-명 ‘조선 나눠먹기’ 전쟁에 대응도 못해
정치권, 역사 교훈 받아들여 반목 청산해야
태산보다도 넘기 어렵다는 보릿고개를 만나는 계절이 5월이다.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 자리 잡고 지내 온 긴 시간 동안, 이 무렵은 민초들에게 한 번도 편안한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끼니를 거르고 굶는다는 것에 대해 체중 조절을 위한 다이어트로만 받아들일 만큼 풍요롭게 되었지만, 북녘 동포들은 이번 5월을 과연 어떻게 지낼까? 남북이 이렇게 완벽히 분단돼 서로 적대하며 지내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그런데 이런 한반도 분단은 사실 임진왜란 때 그 뿌리를 내렸다. 16세기 말이 되면서 강력한 군사력을 지녔던 왜(倭)는 명(明)을 정복하러 갈 테니 길을 내달라는 요구를 했고, 이는 당연히 조선이 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임진왜란은 조선을 침입한 왜와 이를 막겠다고 나선 명의 전쟁이었다. 궁극적으로는 왜와 명 두 나라의 한반도 ‘나누어 먹기’ 전쟁이었다. 왜는 조선의 남쪽 4도를 먹기 위해 진력했고, 명은 왜의 침략을 한강 이남에서 막아 북쪽 4도를 먹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당시의 조선은 율곡 선생께서 말한 대로 ‘기국비기국(其國非其國)’, 즉 나라가 나라가 아니었다. 정치 세력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권력 다툼에 몰두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국가의 전반적인 대응 능력은 크게 약화돼 있었다. 실제로 전쟁 발발과 더불어 선조는 평안도 의주로 일찌감치 도망갔고 몇 안 되는 우리 군사들은 굶주려 힘이 없었다. 활과 몽둥이를 들고 왜군의 조총을 상대해야 하는 조선군은 도망만이 살길이었다.우리 역사에서 가장 참혹했던 5월은 바로 1592년이다. 왜군은 그해 5월 23일에 부산에 상륙했고 6월 10일에는 서울에 들어왔다. 즉, 나라의 수도가 점령되는 데 걸린 시간이 20일도 채 안 되었다. 전투다운 전투는 어디에도 없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그냥 걸어서 올라오기에도 20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다시 개성을 거쳐 평양을 점령한 것이 7월 23일, 그렇게 조선의 3도인 서울과 개성 그리고 평양이 두 달 만에 모두 함락됐다.
선조는 아예 명나라로 피신해 스스로의 안녕을 택하고자 했는데, 이에 대해 당시의 병조판서 류성룡은 단호히 반대했다. 이순신 장군도 똑같은 의견이었다. 만약 선조가 명으로 피신했더라면 조선은 완전히 무너졌을 것이다. 류성룡은 육지에서 그리고 이순신은 바다에서 각각 나라를 구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2007년에 펴낸 ‘위대한 만남’에서 “류성룡과 이순신, 만일 이 두 사람의 만남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는 어떤 우리로 존재하고 있을까? 아마도 ‘중국말 쓰는 우리’ 혹은 ‘일본말 쓰는 우리’로 살고 있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했다. 참되고 역량 있는 두 사람의 지도자가 우리 민족을 구했다.
16세기 말에 조선의 정치지도자들이 밖의 세상 변화에 관심을 갖고 이에 철저히 대비했다면 적어도 전란의 피해는 훨씬 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의 지도층은 한반도 주변 열강의 움직임에는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로지 조선 안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진력했다. 서양의 속담 “역사는 스스로 반복한다”는 무서운 경고다. 뼈아픈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율곡 선생이 오늘의 대한민국 사회를 보시면 과연 어떻게 평가할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으킨 관세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일본, 독일 그리고 캐나다 등에서는 집권당과 야당이 정쟁을 멈추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권력을 잡고 반대파를 쓸어 버리기 위해 한결같이 반목하고 투쟁하는 일뿐이다. 대화와 협력 없는 민주정치는 완벽한 거짓이다. 6월 3일에 선출되는 새로운 대통령은 역사의 교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토대로 필히 국민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기국비기국’이 반복돼서는 결코 안 된다.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