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영의 교실 그리고 경제학] '별' 따려고 '요람' 포기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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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의 교실 그리고 경제학] '별' 따려고 '요람' 포기하는 사회

올초, 오랜 친구에게서 대기업 임원이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네며 문득 머릿속에 스친 생각. 그녀의 출중한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한편으로는 결혼과 육아 대신 일에 온전히 투입한 시간이 결국 임원이라는 ‘별’을 따게 한 동력이 아니었을까. 드라마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한창 업무에 몰입하던 주인공이 어린이집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사색이 돼 달려 나가며, 상사와 동료의 눈치를 보던 모습. 우리는 수많은 미디어와 현실 속에서 비극적인 ‘커리어 타임아웃’을 목격한다. 한국 사회에서 출산의 기회비용은 왜 이토록 잔인한가.

성공 뒤 숨겨진 잔인한 기회비용

제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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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로펌의 변호사를 상상해 보자. 외국 기업 자문을 담당하며, 쉴 틈 없이 일한다. 금요일 저녁, 고객인 미국 회사에서 보낸 메일을 열어 본 순간 주말은 사라진다. 어린 자녀가 없어야 가능한 업무다. 출산은 그녀가 쌓아온 전문성과 사회적 자아, 즉 ‘핵심 커리어’를 베팅해야 하는 도박에 가깝다. 아이를 선택하는 순간, 핵심적인 일을 맡지 못할지 모른다는 공포와 마주한다. 남들은 저만치 전력 질주하는데 나만 멈춰 서서 영영 뒤처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을 그만두지 않더라도, 주요 업무와 승진에선 멀어지게 되기 쉬우니까. ‘일’과 ‘가정’. 왜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제로섬(zero-sum)이 된 걸까.

202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클라우디아 골딘(Claudia Goldin)은 그 원인을 ‘탐욕스러운 일자리(Greedy Work)’에서 찾았다. 고객이나 상사가 원할 때 즉각 일을 처리해야 하는 ‘온콜’ 상태를 요구하는 일자리. 이에 응하는 자에게 기하급수적 보상을 주는 구조다. 주 10시간 일하는 사람보다 주 40시간 일하는 사람이 네 배가 아닌 열 배, 혹은 그 이상의 보수와 승진 기회를 얻는 것. 어린 자녀는 오랜 돌봄이 필요하며 종종 예기치 못하게 아픈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자녀에 대한 온콜. 가정 내 누군가는 담당해야 하는데, 여성이 맡는 사례가 많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은 상황을 더 힘들게 한다. 점점 더 빨리 영어, 수학 공부를 시키려 하는 교육 현실은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다. 모두가 지나친 선행학습을 멈추면 가정의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하지만 나만 멈췄을 때 내 아이가 도태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모두를 비효율적인 과잉 투입으로 내몬다.

'탐욕스런 일자리'와 '교육 온콜'

골딘은 업무 표준화를 통해 ‘대체 가능성’을 높인 미국 약사 사례를 희망으로 제시했다. 약국 업무가 매뉴얼화돼 동료가 내 일을 완벽히 이어받을 수 있게 되자, 약사들은 보수 차별 없이 하루 세 시간 근무 등 유연한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지만 현대의 여러 전문직은 단순히 업무를 쪼개거나 매뉴얼화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의 표준화는 AI 시대를 맞이한 우리에게 또 다른 고용 불안의 위협으로 다가온다.

진정한 해법은 업무를 기계적으로 쪼개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 자체를 유연하게 바꾸는 ‘퍼플잡(Purple Job)’의 확산에 있다. 오전에는 직장에서 집중도 있게 일하고, 오후에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남은 업무를 처리하는 식의 유연함이 특혜가 아니라 기본이 돼야 한다. 일과 가정의 조화를 상징하는 퍼플잡이 고위직과 전문직 전반으로 확산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직장 온콜’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교실에서 마주하는 제자들이 훗날 성인이 되었을 때, ‘별’을 따기 위해 따스한 ‘요람’을 포기해야 하는 가혹한 선택지 앞에 서지 않기를 바란다.

김나영 교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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