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은 이제 단순한 데이터 분석이나 언어 처리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에서 직접 작동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챗GPT와 같은 거대언어모델이 인간의 언어 사고를 모사했다면, 피지컬 AI는 공간과 시간의 맥락을 인식하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 '움직이는 지능'이다. 이제 AI는 로봇, 센서, 통신, 기계와 결합해 실물 공간에서 작동하는 기술로 발전하고 있다. 물류 로봇, 스마트공장의 자율 제어, 자율주행차 등은 모두 피지컬 AI의 대표적 사례다. 이는 기술의 발전을 넘어 산업 구조와 노동 방식을 바꾸는 흐름이며, 대한민국이 주목해야 할 전환점이다.
대한민국은 언어모델 기반 AI 경쟁에서는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피지컬 AI에서는 기회가 있다. 이 분야는 알고리즘만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로봇, 제어, 반도체, 센서, 통신 같은 복합 기술이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하며, 우리나라는 이 기반 기술에 강점이 있다. 특히 제조, 물류, 건설, 농업 등 우리가 경쟁력을 가진 산업 분야와 피지컬 AI는 높은 상호 시너지를 가진다. 필요한 것은 인프라 구축, 기술 표준화, 생태계 조성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전략적 투자다. 이는 단순한 기술개발을 넘어서, AI 주도권 회복과 고용 창출의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 피지컬 AI는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동시에, 새로운 기술과 장비 산업을 성장시키며 고급 인재 수요를 증가시킨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AI 경쟁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는 '움직이는 AI'에 집중해야 한다. 이 전환을 국가적 전략으로 추진할 때다.
그렇다면 '움직이는 AI'를 구현하기 위한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이질적인 기술과 산업을 연결해 주는 소프트웨어(SW) 플랫폼이다. 피지컬 AI는 단순히 로봇이나 센서 기술만으로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SW 인프라가 필요하다. 이러한 통합은 기업들의 개별 대응으로는 불가하다. 센서, 통신, 제어, 설비, 로봇 등 다양한 기술을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동시키는 플랫폼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 지멘스의 공장 운영 플랫폼이다. 지멘스는 정보기술(IT) 시스템과 설비, 로봇, 통신 기술을 하나의 공장 자동화 SW 플랫폼으로 통합해 독자적인 자동화 에코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미국의 엔비디아도 마찬가지다. 자사의 '옴니버스(Omniverse)' 플랫폼을 통해 피지컬 AI 생태계의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려 하고 있다. 이 분야는 세계적으로도 초기 단계다. 지멘스나 엔비디아조차 완성된 구조라기보다는 생태계를 만들고 있는 과정이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에게도 기회의 창이다. 챗GPT가 등장했을 때,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은 불가능하다”라며 패배주의에 빠졌지만, 중국의 딥시크(DeepSeek) 사례는 대규모 자본만이 정답은 아님을 보여준다. 핵심은 방향성과 의지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세계적인 SW 플랫폼은 만들 수 없다'라는 무기력감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그런 위축이 아니라, 도전과 실행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AI 산업 추진 전략의 하나로 GPU 대량 구매에 나서고 있고 이도 필요하다. 하지만 외산 하드웨어 의존을 넘어서 피지컬 AI를 위한 SW 플랫폼 개발과 생태계 조성에도 함께 고민해 봐야 한다. 이제는 다시 뛸 때다. 움직이는 AI, 피지컬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산업 전략이다. 대한민국은 기반 기술적으로도, 산업적으로도 이 기회를 붙잡을 준비가 되어 있다. 두려워할 것은 “독일의 지멘스와는 경쟁이 안 돼” “우리가 엔비디아를 어떻게 이겨?” 이런 패배주의와 시도도 하지 않은 정책이다. SW 산업을 책임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그 책임을 지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술 도전의 선봉에 서주길 바란다.
장영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yjang@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