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한 하청업체 소속 노조가 원청인 삼성전자를 상대로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나섰다. 최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진보당 소속 의원들과 기자회견을 연 민주노총 금속노조 이앤에스지회다.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모두 반영해달라는 요구를 회사가 받아들이지 않자 아예 원청을 교섭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는 개별 사용자(하청)를 교섭 당사자로 규정한 현행 노동조합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주장이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 원청에 교섭 의무가 부여될 수도 있다. 하청 근로자에 대한 실질적 고용지배력, 즉 ‘사용자성’이 인정될 때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앤에스에 웨이퍼 세척 업무를 맡겼을 뿐, 이 회사 경영에 관여하거나 지배력을 행사할 위치에 있지 않다. 이앤에스 노조의 주장은 삼성전자의 실질 지배력은 따지지 않은 채 원청이니 무조건 교섭에 응하라는 식이다. 경제계에선 노동계가 노조법 제2, 3조 개정을 뜻하는 소위 ‘노란봉투법’의 국회 통과를 위해 하청 노조와 원청 간 갈등을 일부러 부각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한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과 함께 ‘하청 노동자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원청도 사용자에 포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실질 지배’ 개념은 근로계약처럼 법적으로 명확하지 않고 자의적 해석 여지도 크다. 실제 사용자 범위가 무한정 확대되고, 하청 근로자와 고용계약을 맺지도 않은 원청이 단체교섭 이행청구 등 각종 법적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진다.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억울한 처벌이 속출할 수도 있다.
우리 산업 구조는 수많은 원·하청 관계로 얽혀 있다. 현대차의 협력업체만 5000여 개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원청이 하청의 교섭 요구에 일일이 응해야 한다면 정상적 기업 운영에 심각한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도급제가 제도로서 실효성을 잃을 수 있다. 지난 21, 22대 국회에서 통과된 노란봉투법에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된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이었다. 대선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란봉투법을 강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와 민주당은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추진 여부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