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료기기 공급망 위기 예방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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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의료기기 공급망 위기 예방하려면

최근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의료기기 업계는 주사기 수급 불안이라는 위기에 맞닥뜨렸다. 다행히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보건복지부의 매점매석 고시 및 원자재 우선 공급 등 신속 대응으로 시장이 빠르게 안정화됐지만, 이 같은 경험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 하나를 남겼다. 과연 현재의 공급망 관리 체계는 미래의 위기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가.

이번 사안에서 먼저 발생한 것은 실제 공급 부족이 아니었다. 중동 정세에 따른 원부자재 수급 불안 가능성이 제기되자 유통업체와 의료기관은 공급 중단 가능성에 대비해 안전재고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주문량과 공급 문의가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생산량은 즉각 늘지 않았다. 의료기기의 특성상 생산설비 확충과 증산은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에서 먼저 움직인 것은 생산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이었다.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실제 수요를 넘어서는 주문이 발생했고, 이는 공급망 부담을 가중시켰다. 공급 부족을 우려한 행동이 공급 불안을 현실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 것이다.

이 사례는 오늘날 공급망이 안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 현재 공급망 관리 체계는 생산량·재고량·수입량 등 실물 데이터 중심으로 운용된다. 물론 이러한 지표는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이미 발생한 상황을 파악하는 데 유용할지 몰라도 위기를 사전에 예측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실제 위기는 재고가 바닥난 이후가 아니라 시장 참여자의 행동이 변화하는 순간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공급망에서는 실제 사용량보다 주문량이 훨씬 빠르게 증가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평소 한 달치 재고를 유지하던 수요처가 석 달치를 확보하려 하고, 구매 문의가 급증하며 긴급 발주가 늘어난다. 이 같은 변화는 기대와 불안, 다시 말해 시장 심리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공급망 모델링은 여전히 산업화 시대의 재고관리 관점에 머물러 있다. 이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재고 관리에서 행동 관찰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주문 증가율, 고객 문의량, 긴급 발주 비중, 안전재고 확대 여부, 리드타임 변화 등 행동 기반 지표를 핵심 관리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둘째, 공급망 심리지수(supply chain sentiment index)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심리지수처럼 시장 참여자의 기대와 불안을 계량화한다면 공급 부족이 현실화되기 이전의 경고 신호를 보다 정교하게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공급망 디지털 트윈(digital twin)과 AI 기반 조기경보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원부자재 공급업체부터 제조·유통·의료기관까지 공급망 전반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하고, 위험 신호가 어떤 경로로 확산하는지 실시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19 시기의 마스크 대란과 이번 주사기 공급 불안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리는 늘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야 대응할 수밖에 없는가. 이번 의료용 수지 공급 우려는 단순한 원부자재 이슈가 아니다. AI 시대 공급망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보여준 하나의 신호다. 이제는 재고를 관리하는 시대에서 행동을 예측하는 시대로, 사후 대응에서 조기 예측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의료기기 산업의 안정성과 국민 보건 안전을 함께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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