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 생산능력은 이제 글로벌의 스탠더드를 만드는 수준에 이르렀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을 비롯한 국내 기업은 대규모 생산능력과 품질 경쟁력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생산 현장을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또 다른 현실이 보인다. 제조 공정에서 사용되는 핵심 원·부자재와 장비 상당수는 여전히 미국·유럽 기업의 제품이라는 점이다.
국내 기업의 기술력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바이오의약품 생산 현장에서 ‘검증된 브랜드’ 자체가 품질 경쟁력이 되는 것과 관련 있다. 업계에서는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에 대한 대응 경험, 글로벌 빅파마에 대한 공급 경험, 장기간 축적된 품질 데이터 등이 공급망 선택의 핵심 기준이 된다고 설명한다. 미국 수출을 목표로 하는 제조 현장에서 글로벌 허가 경험이 풍부한 해외 소부장 기업 제품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건 그 때문이다.
바이오 기업은 한 번 선택한 공급망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원·부자재나 장비 하나가 바뀌어도 공정 검증과 품질 데이터 확보를 다시 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허가 변경까지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바이오 소부장은 단순히 부품 산업이 아닌 ‘신뢰를 공급하는 산업’에 가깝다. 기술만으로 진입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라는 의미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이런 구조적 문제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 당시 글로벌 물류 차질과 공급망 불안이 이어지면서 국내 바이오 업계 역시 해외 원·부자재와 장비 수급 문제를 겪었다. 특정 해외 공급사 제품 의존도가 높은 경우 대체 공급망을 단기간에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도 확인됐다. 바이오산업에서 소재·부품·장비의 원활한 수급 문제는 생산 안정성과 직결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문제는 국내 바이오 소부장 기업이 그 신뢰를 축적할 기회를 얻기 어렵다는 데 있다. 초기 연구개발 단계를 마치는 건 비교적 쉽다. 그러나 우수 의약품 제조·관리 기준(GMP)에 맞는 생산을 실제로 하면서 장기간 검증 데이터를 쌓고, 글로벌 공급망에 진입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실험실 수준의 개념검증(PoC)은 가능해도 실제 양산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공장과 설비, 품질 시스템, 실증 경험이 필수적이다.
시장 논리만으로 이 시간을 버티기는 어렵다. 바이오 소부장은 개발 기간이 길고 설비투자 부담이 크며, 매출이 단기간에 나지도 않는다. 대기업이라고 해도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이미 글로벌 선도 기업이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한 레퍼런스와 공급망 신뢰를 기반으로 시장을 선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국은 이미 바이오 소부장에 대해 국가 차원의 장기 투자를 하고 있다. 중국은 거대한 내수와 정책 자금을 기반으로 바이오 소부장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과 유럽 역시 공급망 안정성을 국가 전략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바이오 소부장 산업은 민간 투자만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영역이자, 장기 정책 금융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국민성장펀드 역시 이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바이오 소부장은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인 공급망 경쟁력 확보가 중요한 산업이다. 기술 기업이 초기 실증과 양산 검증 단계를 버티고 글로벌 레퍼런스를 축적할 수 있도록 긴 호흡의 자금 지원 구조를 갖춰야 한다. 업계에서 정책 금융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멋진 공장을 짓는다고 바이오 강국이 되지 않는다. 제조 현장에서 쓰는 핵심 소재·부품·장비 산업까지 함께 성장해야 비로소 안정적인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생산시설뿐 아니라 그 생산을 뒷받침하는 국내 바이오 소부장 기업이 함께 성장해야 한국 바이오산업 역시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내 소부장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와 실적을 쌓아갈 수 있는 시간과 기회일지 모른다.

4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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