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 맞아… 고민 커지는 美 관광업계
최고 관광지 뉴욕도 “손님 줄어” 울상… WSJ, “외국인들, 미국 거부로 복수”
입국 심사 고초 사례 이어지며 ‘공포’… 휴대전화 사진, SNS 콘텐츠까지 수색
미국 거주 외국인들도 여행 발 묶여
● 얼어붙은 미국 관광에 뉴욕도 울상
날씨가 온화해지고 공원마다 초록이 풍성해지며 거리 여기저기서 야외 축제가 펼쳐지는 초여름의 뉴욕은 본격적인 관광 성수기가 시작되는 시기다. 예년 같으면 거리 여기저기서 대형 관광버스가 목격되고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세계 각국 관광객들의 언어로 시끌벅적해지는 때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해 뉴욕의 상인들은 한결같이 “손님이 없다”, “장사가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시작된 관세 전쟁과 불법 이민자 단속, 비자 심사 강화 등 모든 게 관광지로서의 미국을 ‘비호감’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원래 추세대로라면 올해 뉴욕시는 역대 최다 방문객 수를 기록할 예정이었다”며 “그런데 트럼프가 등장했다”고 꼬집었다. 맨해튼의 관광 명물 중 하나인 이층 버스 운영사 톱뷰 사이트시잉(TopView Sightseeing)의 이용객 수가 20∼25% 감소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NYT는 “관광업은 뉴욕시 경제의 핵심 축”이라며 “브로드웨이, 박물관, 레스토랑 등 여러 산업이 이를 기반으로 유지되며 26만 명 이상의 고용이 달려 있다”고 우려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여름 휴가철이지만 관광객들이 미국 여행을 거부하고 있다”며 “외국인 여행객들은 관광 수입을 다른 곳으로 빼돌리며 미국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세관국경보호청(CBP)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비행기를 통해 미국에 도착한 외국인은 전년 대비 6% 줄었고, 유럽에서 오는 항공편 예약은 더욱 줄어 8월까지 기준 약 12%가 감소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에 대해 관세 전쟁뿐 아니라 ‘미국의 51번째 주가 돼야 한다’며 주권을 위협하는 발언을 반복하면서 캐나다 국민들의 관광 심리가 싸늘하게 식은 것도 관광 산업 타격의 큰 원인으로 지목됐다. 캐나다 관광객은 미국으로 오는 외국인 관광객의 4분의 1을 차지하는데, 이 수는 최근 작년의 70%대까지로 줄어들었다.● 외국인 관광객들 ‘입국 공포’ 호소뉴욕을 비롯한 미국의 관광 침체는 비단 외국인들의 ‘감정적’ 요인 때문만은 아니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에서 외국인에 대한 입국 심사 등을 강화하며 입국 과정에서 갖은 고초를 겪거나 입국이 거부된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미국 국경관리 당국은 미국으로 입국하는 외국인 여행자들의 휴대전화나 컴퓨터를 수색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올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이 같은 권한을 더욱 강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국경 담당자들의 행동이 더욱 ‘공격적’으로 바뀌었다고 외신들은 지적했다.
NYT는 “과거에는 전자기기 등에 대한 수색이 드물었고 지난해 (휴대전화 콘텐츠 등) 수색을 받은 외국인 여행객 비율은 0.01% 미만이었다”며 “하지만 이젠 일명 ‘강화된 심사’라고 불리는 공격적 전술이 쓰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례로 최근 두 명의 독일인 관광객은 미국 남부 국경을 통해 입국하려다 각각 샌디에이고와 티후아나 국경 검문소에서 검문을 당한 뒤 구금 시설로 이송됐다. 이들은 미국 언론 등에 통역 없이 독방에 갇혔다고 진술했다. 한 캐나다인이 비자 검사 과정에서 구금돼 ‘사슬에 묶였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또 한 프랑스 과학자가 업무를 위해 미국에 입국하려다 입국이 거부돼 되돌아가는 사건도 발생해 논란이 됐다. 프랑스 정부는 “그가 동료와 친구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과학 정책에 대한 ‘개인적 (비판) 의견’을 표한 메시지가 문제가 됐다”는 취지로 설명했다.한편, 적법한 비자를 갖고 있었던 브라운대 의대 교수가 레바논에 있는 친척들을 방문하고 돌아오다 미국 입국이 거부돼 추방된 일도 있었다. 국경 당국은 해당 교수의 휴대전화에서 헤즈볼라 관련 인사들의 사진 등 수상쩍은 메시지를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평범한 국가의 평범한 시민도 언제든 난감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공포’가 퍼지면서 외국인 여행객들이 굳이 미국을 찾을 이유가 없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교민은 “해마다 한 번은 한국의 부모님이 미국을 찾아 손주들과 여행을 하고 가셨지만 올해는 안 오신다 했다”며 “‘영어도 못하는데 지은 죄도 없이 곤란한 일을 겪으면 어쩌냐’고 걱정하셨다”고 전했다.
급기야 이달 9일부로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12개 국가 등에 대해 미국 입국 금지령을 내리면서 공항에서의 입국 심사가 더욱 강화됐다는 전언도 나오고 있다. AP통신은 과테말라에서 미국 여행을 왔다가 1시간에 걸쳐 세 번이나 입국 심사 인터뷰를 겪은 사례를 보도하며 “과테말라는 입국 금지 대상국이 아니지만 이런 일이 생기고 있다”고 전했다.
● 오기도 힘들지만 가기도 어려워
한편, 미국에서는 외국인들의 입국뿐 아니라 미국 거주 외국인들의 출국이 어려워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입국 심사와 비자 심사, 소셜미디어 검사 등이 강화되면서 섣불리 미국을 떠났다가 다시 입국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을 선언한 하버드대 등 미국 대학들의 외국인 유학생을 중심으로 자주 관찰되고 있다. 방학 때면 본국에 다녀오거나 친구들과 해외로 여행을 떠났던 학생들 상당수가 올해는 그냥 학교에 남기로 했다는 것이다.
AP통신은 “유학생들은 방학 중 미국 밖으로 가는 여행이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며 “출국 후 재입국을 시도할 때는 이민 서류, 학교 성적 증명서, 심지어 범죄 혐의로 기소돼 법원에서 기각된 경우 법원 서류까지 지참해야 한다”고 전했다.
NYT는 유학생뿐 아니라 시민권자와 결혼한 비시민권자 외국인들이 신혼여행까지 포기하고 있다고 조명하기도 했다. 이 매체는 “영주권 절차를 밟는 외국인들에 대한 국경 당국의 심사 강화와 그에 따른 구금 사례가 예년보다 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이민 변호사와 전문가들에게 결혼과 신혼여행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커플들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가 각종 상품에 대한 교역 장벽을 높였다면 국경 정책은 사람 간 교류의 문턱까지 높이고 있는 셈이다.
임우선 뉴욕 특파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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