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MI5의 감시 팀이 MI6 내 ‘이중 스파이(double agent)’를 적발하기 위해 벌인 비밀작전(작전명 웨드록·Operation Wedlock)을 다룬 영국 일간 가디언의 최근 보도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기사는 적성국 러시아에 정보를 넘긴 혐의를 받는 MI6 간부를 검거하기 위해 영국 정보기관 사이에 벌어진 도·감청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최근 중국 정보기관에 기밀을 팔아 넘긴 국군정보사령부 요원이 정보당국에 적발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시기 국제정치에 큰 영향을 미친 이중 스파이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 푸틴의 ‘이중 스파이’ 20년간 추적
탈냉전 이후 최대의 이중 스파이 적발 작전이었기에 팀 소집부터 작전 지시 등 모든 것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졌다. 감시 팀은 런던 템스강 근처에 있는 MI5 본부를 벗어나 런던 남서부의 완즈워스에 보안업체로 위장한 사무실을 차렸다. 또 작전 지시를 받을 때도 통신 추적 등을 피하기 위해 교회에서 은밀한 접촉이 이뤄졌다.
국내법상 MI5는 해외 작전이 금지돼 있지만(해외 정보 수집 등의 임무는 MI6 담당), 웨드록 작전은 예외였다. 이중 스파이 혐의자가 유럽, 아시아, 중동 등으로 출장을 가면 감시 팀이 따라붙었다. 혹시나 모를 추적을 피하기 위해 호텔이 아닌, CIA의 해외 안전 가옥에 머물렀다.
이처럼 MI5는 20년간 막대한 인원과 장비를 투입했지만, 혐의자가 이중 스파이라는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정보 당국자는 가디언에 “혐의자가 이중 스파이가 아니라면, MI6 내부에 아직도 스파이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념, 돈으로 움직인 이중 스파이들
러시아가 영국 정보기관 안에 ‘두더쥐’를 심은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냉전이 한창 벌어지던 1950년대 서구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케임브리지 5인방’ 사건이 대표적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신으로 영국 정보기관에서 활동한 킴 필비, 도널드 매클레인, 가이 버지스 등 다섯 명은 자신의 사회주의 신념에 따라 자진해서 소련에 정보를 제공한 이중 스파이들이었다. 이들은 대학 재학 중이던 1930년대 포섭돼 20년 넘게 서방의 고급 정보를 소련에 전달했다. 하지만 러시아 내전 당시 영국이 백군을 지원한 기억에 사로잡힌 스탈린이 케임브리지 5인방을 신뢰하지 않아, 이들이 제공한 일급정보 상당수가 사장됐다. 2차대전 발발 전후 반(反)파시즘 신념에 따라 영국에 핵심 정보를 제공한 독일 내 이중 스파이도 있었다. 1938년 독일 나치의 외교관 볼프강 추 푸틀리츠는 전쟁을 막으려면 히틀러에 대한 강경 노선이 필요하다는 정보보고를 MI5에 보냈다. 유화책은 히틀러를 공격적으로 만들 뿐이라는 것. 역사가들은 이듬해 독일의 체코 침공 당시 영국이 히틀러의 요구를 거부하고 강경론을 고수했다면 2차대전이 발발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보고 있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등 다양한 나라들의 정보 활동이 치열해지는 상황이다. 당연히 해외 정보 수집 못지않게 내부 정보를 지키는 노력도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2차대전과 냉전시대 등에서 이중 스파이가 제공한 정보가 국운을 좌우한 역사적 사례들에 대한 관심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상운 국제부 차장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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