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규인]올림픽 가는 제일 빠른 길, 올림픽 DNA를 물려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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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서울시교육청 출입 기자 시절 일이다. 한국사립초등학교 교장회에서 점심 식사 자리를 만들었다. 마침 앞자리에 입학 경쟁률이 높기로 소문난 학교 교장이 앉았기에 물었다.

“사립초는 추첨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데 재벌가 손자·손녀, 유명 연예인 아들딸은 어떻게 다들 그 학교에 다닙니까. 혹시 야로가 있는 거 아닙니까.” 이 교장은 씩 웃으며 답했다. “태어날 때부터 ‘뽑기 운’은 타고난 아이들 아닙니까. 초등학교 입학 추첨에 뽑힌 것 정도는 이 친구들에게 행운도 아니지요.”

겨울올림픽에 출전하는 데도 이 뽑기 운이 필요하다. 1924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제1회 대회를 치른 겨울올림픽은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대회로 25회를 맞았다. 이번 대회까지 겨울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는 총 3만2151명이다. 이 102년 동안 지구에 살았던 사람은 130억 명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전체 인구 가운데 0.0002%만 겨울올림픽 출전 경험이 있는 셈이다.

이번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대회에 출전한 2916명 가운데 최소 286명(9.8%)은 5촌 이내 혈족에 ‘올림피언’이 있다. ‘올림픽 DNA’를 물려받으면 겨울올림픽에 나갈 확률이 4만9000배 높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286명 가운데 243명(85.0%)은 출전 종목도 같다. 요컨대 스케이트, 스키, 썰매를 잘 타는 집안이 따로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번 대회 개회식 때 슬로베니아 대표팀 기수를 맡은 도멘(27)-니카 프레브츠(21) 남매는 스키점프에 나란히 출전한다. 이들의 형·오빠인 페테르(34)와 체네(30)는 2010년 밴쿠버 대회 때부터 2022년 베이징 대회 때까지 스키점프에서 올림픽 금 1개, 은 2개, 동메달 1개를 따냈다.

도멘-니카 남매 역시 꼭 이번 대회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올림픽 메달을 딸 확률이 높다. 과거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프랑스 국립 스포츠 생의학 및 역학 연구소(INSEP)는 1896년 아테네 대회 때부터 2012년 런던 대회 때까지 여름·겨울올림픽에 참가한 선수 12만5051명을 대상으로 친인척 관계를 조사한 뒤 ‘올림픽 메달도 대물림된다(A Medal in the Olympics Runs in the Family)’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올림픽 참가 선수 가운데 20.4%가 메달을 땄다. 그런데 부모가 올림픽 메달리스트였다면 이 비율은 43.4%로 두 배 이상으로 오른다. 도멘-니카 남매처럼 형제자매가 메달리스트였을 때는 64.8%로 이 비율이 더 높다. 유전자가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는 한 명이 메달을 땄을 때 다른 한 명도 메달을 딴 비율이 85.7%에 달했다. 다만 누군가 첫걸음을 떼지 않는다면 올림픽 DNA를 누구에게도 물려줄 수 없다. 아프리카 나라 기니비사우와 베냉은 이번 대회를 통해 겨울올림픽 첫 출전 기록을 남겼다. 아랍에미리트(UAE)도 이번이 겨울올림픽 첫 출전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는 ‘파우스트’에 “모든 시작은 기적의 문을 여는 열쇠”라고 썼다. 뽑기 운 없이 태어난 모든 이들도 각자 찾고 싶은 열쇠를 찾게 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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