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정수]‘AI 캠퍼스’가 키워낼 복붙 전문가와 냉소적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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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수 국제부 기자

홍정수 국제부 기자
“입학부터 졸업까지, 인공지능(AI)이 모든 대학 생활에 동행한다.”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AI 기반 대학’이란 야심찬 구상을 내놨다. 새로 출시할 교육용 버전 AI ‘챗GPT 에듀’를 학생들의 평생 동반자이자 대학 교육의 새로운 표준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대학에선 AI 조교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부터 수업 설계를 돕고, 진로상담실에서는 AI 챗봇이 채용 면접을 연습시켜 준다. 교수와 교직원들에게도 맞춤형 AI봇을 제공한다.

적잖은 대학들이 오픈AI의 ‘신상품’에 큰 관심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이미 캘리포니아주립대는 “미국 최초이자 최대의 AI 기반 대학”이 되겠다며 올해 46만여 명의 학생에게 챗GPT를 제공했다. 대학 교육 시장을 둘러싼 빅테크 기업들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소식을 다루면서 독자들에게 댓글로 의견을 달아 달라고 부탁했다. 높은 효율성과 맞춤형 교육의 효과에 대한 지지는 분명했다. 하지만 교육자와 교직원, 학생을 막론하고 ‘대학의 AI화’에 대한 우려가 더 많이 쏟아졌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단순한 AI를 활용한 부정행위나 표절 걱정 너머를 향해가고 있었다.

텍사스대의 한 교수는 최근 기말고사에서 ‘악몽’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학생들 절반 이상이 똑같은 오답을 냈는데, 모두 자신이 수업 시간에 가르치지도 않은 사례를 활용했다는 것. 알고 보니 이는 모두 구글 챗봇이 내놓은 답변이었다.

비슷한 사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다른 교육자는 “챗봇은 사용자가 스스로 정보를 찾으려 애쓰는 대신에 ‘복사-붙여넣기 문화’에 굴복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 대학생은 AI가 최소한의 노력만 하고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면서 안주하게 만든다고 고백했다.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 자밀 자키는 저서 ‘희망찬 회의론자’에서 사회의 양극화와 분열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냉소주의’를 들었다. 타인을 믿지 못하고 세상의 부정적인 면에만 주목하는 태도에 젖어 들면 현실을 개선하려 노력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또 질문하는 법을 잊고 무기력하게 현실에 순응하거나 극단적 주장에 빠져들 위험도 커진다. 자키 교수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한 건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회의주의’다. 기존의 냉소적 믿음에 의심을 품고 질문하는 사람만이 상황을 개선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탐색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에서다.

AI 캠퍼스가 키워낼 젊은이들은 어떤 모습일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이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탐구 과정을 즐길까. 혹은 정답을 향한 빠른 지름길에만 집착할까. 모든 현상에 “정말 그럴까”라는 의문을 제기할지, 아니면 챗봇이 쥐여주는 답안을 의심 없이 제출하는 데 익숙해질지도 궁금해진다. 나아가, ‘무기력한 냉소주의’와 ‘희망찬 회의주의’ 중 어디에 더 쉽게 끌릴까.

섣부른 예측은 금물이지만 현재로선 낙관적인 답을 내놓긴 어렵다. “AI가 대세”라는 말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보다 “정말일까”를 되물으며 10년, 20년 뒤를 바라보는 장기적 안목을 갖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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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수 국제부 기자 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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