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한국은 반도체에서부터 조선, 자동차와 같은 전통 제조업 기반과 게임, 로봇, AI 산업까지 두루 갖춘 몇 안 되는 국가다. 젠슨 황도 그런 면에서 한국을 주목했을 것이다. 엔비디아가 아무리 뛰어난 피지컬 AI의 ‘두뇌’ 격인 소프트웨어를 만든다고 한들 결국 현실에 적용해 보려면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실험해볼 테스트베드가 필요한데 한국만 한 곳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곱씹어볼 필요도 있다. 그는 한국이 피지컬 AI 시대의 ‘승자’라고 칭한 것이 아니라 ‘잘 준비된 나라’라고 말했다. ‘준비’와 ‘승리’는 다르다. 그리고 결국 최종적인 승리는 향후 전반적인 피지컬 AI 공급망을 얼마나 탄탄하게 키우느냐에서 갈릴 공산이 크다. 반도체 강국이자 탄탄한 제조업 기반을 자랑하는 우리이지만 전반적인 피지컬 AI 공급망에서의 입지는 아직 약하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의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아틀라스’ 같은 로봇을 자랑하지만 정작 한국 로봇 산업의 소재·부품 국산화율은 40%대에 머문다. 로봇의 심장인 감속기와 제어기는 일본에, 모터용 희토류 자석은 중국에 의존하는 구조다. 그럼 로봇의 몸이 아닌 두뇌는 우리가 장악하고 있을까. 로봇 등 피지컬 AI 구현을 위해서는 현실 세계의 물리적 변화를 예측하고 AI의 학습과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월드모델’ 기술이 핵심으로 꼽힌다. 국내 기업들이 월드모델 구축에 나서고 있지만, 월드모델도 아직까지는 해외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현재 가장 영향력이 큰 월드모델 플랫폼은 엔비디아의 코스모스다.
한국은 피지컬 AI 시대의 유망한 시장이자 중요한 실험장이다. 그러나 아직은 기술과 공급망을 주도하는 국가라기보다, 글로벌 기업들이 개발한 플랫폼과 솔루션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국가에 더 가깝다.젠슨 황의 방한이 한국 피지컬 AI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맞다. 하지만 이제 숨 가빴던 방한은 끝났다. 이제 그의 방문을 계기로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차분히 들여다봐야 한다. 한국은 AI 시대 누구보다 유리한 출발선에 서 있는 나라다. 문제는 우리가 피지컬 AI 시대의 ‘주인공’이 될 것인지, 아니면 해외 기업들이 만든 플랫폼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고마운 ‘우수 고객’에 머무를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젠슨 황의 방한이 남긴 질문은 바로 거기에 있다.
장윤정 산업1부 차장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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