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유종]“임상시험, 베이징에 밀렸다”… 의정갈등에 멈춘 의학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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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진료와 수술, 당직 근무에 모든 시간을 할애하는데, 연구할 틈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난해 2월 시작된 의정 갈등은 의학 연구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의대 교수 연구를 보조할 전공의와 의대생이 병원과 학교를 떠났고, 의대 교수와 전임의(펠로)는 전공의 공백을 메우느라 눈코 뜰 새가 없기 때문이다.

대한의학회지(JKMS) 관계자는 “2023년 논문 1220편이 투고됐는데 지난해에는 투고 논문이 900편에 그치며 25%가량 줄었다”고 밝혔다. 미국 국립보건원 사이트 펍메드(PubMed)에 게재된 한국 기관 소속 연구자(모두 한국인) 논문도 감소세다. 2022년 3만1873건에 달했던 논문은 2023년 3만642편, 2024년 3만473편으로 줄었다. 의학 논문을 하나 쓰려면 1년에서 1년 반 정도 걸리기 때문에 감소 여파는 올해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지난해 글로벌 제약사 주도로 추진한 의약품 임상시험에서 서울 소재 의료기관 점유율은 1.32%로 중국 베이징(1.4%)에 이어 2위였다. 서울은 2017∼2023년 7년째 1위를 고수했다. 하지만 의정 갈등 여파로 국내 임상 연구가 줄면서 신약 개발이나 연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임상 시험에는 적어도 의사가 1명 이상 포함돼야 하는데, 의사가 참여하지 못하면서 프로젝트 자체가 중단된 사례도 나온다.

국내 의료진이 해외 공동연구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거나 임상시험 환자를 모집하기 어려워 일부 약물의 임상 재평가 기한을 연장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제약사가 한국을 ‘불확실성이 큰 국가’라고 판단하면 후속 임상시험 유치 등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정반대다. 중국은 최근 미국을 제치고 임상시험 규모 1위에 올라섰다. 중국은 2017년 국제 의약품 기준을 만드는 기구인 국제 의약품 규제 조화위원회(ICH)에 가입한 뒤 의약품 임상 개발 규제를 선진국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해 왔다. 중국 내에서 진행되는 임상시험은 비용도 저렴한 편이며 신약 개발에도 시너지 효과를 낸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 제약회사 파이프라인(신약 개발) 상위 25위 안에 장쑤헝루이, 시노바이오팜, 상하이포순, CSPC 등 4개 중국 대형 제약사가 포함됐다. 국내 제약사는 한 곳도 들지 못했다. 지난해 중국 제약시장은 전년 대비 7.2% 성장하며 3000억 달러(약 410조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정부는 2023년 8월 이공계 연구개발(R&D) 관련 예산안을 5조2000억 원(16.6%) 삭감해 편성했다. 국회에서 12월 6000억 원이 증액돼 통과됐지만, 감액 여파는 이듬해 바로 드러났다. 예산이 줄어든 연구실은 연구와 실험을 온전히 진행하기 어려워졌고 논문 출고도 줄었다. 연구를 지원하던 이공계 생태계 기업들도 경영난에 시달렸다. 현재 대학병원은 이공계 연구실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임상시험과 의학 연구, 신약 개발은 서로 연결돼 있다. 다행스럽게도 의료계 내부에서도 대화의 목소리는 나온다. 정부와 의료계가 빨리 의정 갈등을 해결하고 의료 정상화뿐만 아니라 미래 먹거리인 신약 등 바이오 산업에 매진해야 할 때다. 중국의 ‘바이오 굴기’는 이미 위협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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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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