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은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당면 과제다. 지난달 한국갤럽이 성인 10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79%가 ‘정년을 65세로 올려야 한다’고 답했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은 정년 제한이 없거나 상향 조정하고 있다. 다만 ‘자식 인생도 책임을 못 지는데, 어떻게 직원을 40년이나 책임져야 하냐’ ‘60세도 버거운데 연금을 못 받고 5년을 더 일해야 한다면 언제 은퇴하냐’ 등의 의견도 나온다. 정년 연장 방식을 두고 정부와 경영계, 노동계 의견도 첨예하게 엇갈린다.
정년을 늘리면 일차적으로 사업주 부담이 커진다. 직장인은 은퇴하고 싶으면 언제든 퇴사할 수 있지만, 사업주는 얘기가 다르다. 청년 고용 감소, 생산성 저하 등 경제 순환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창업, 채용에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년 연장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초고령사회로 진입했고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이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2차 베이비붐 세대(1964∼1974년생)가 지난해부터 차례대로 은퇴하면서 향후 11년간 경제성장률을 연간 0.38%포인트까지 떨어뜨릴 것으로 전망됐다.우리보다 앞서 고령화를 겪은 일본은 1994년 60세 정년을 도입했다. 2012년에는 65세까지 사실상 정년을 연장했다. 현재 70세까지 일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일본이 60세 정년을 도입할 당시 기업의 80%는 이미 60세 정년을 시행하고 있었다. 65세로 정년을 늘릴 때도 2000∼2025년 3단계에 걸쳐 점진적으로 도입해 기업 부담과 노동시장 부작용을 최소화했다. 한국은 2016년 60세 정년을 도입한 상황에서 정년 연장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지적이 있다.
일본은 정년을 5년 늘리면서 기업을 많이 배려했다. 계속고용 제도를 도입해 직원이 같은 직장에서 일하지만, 임금이 줄어들 수도 있게 했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 기업 70%는 계속고용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고용 의무를 ‘개별 기업’에서 ‘기업 그룹’으로 확대해 계열사로 옮길 수 있도록 했고 근무 태도가 불량하거나 정상 근무가 어려울 때는 제외할 수 있도록 했다. 또 70세까지 취업하는 방안으로 다른 기업 재취업, 창업 지원, 프리랜서 계약 등을 검토하고 있다. 정년 연장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고민은 청년을 위한 배려다. 대한상공회의소 보고서에 따르면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정년을 연장하면 청년 일자리가 위축될 수 있다. 청년층은 업무 숙련도는 낮지만, 열정적이고 창의력이 높다. 반면 고령층은 순발력은 떨어지지만, 숙련도가 높다. 고령층이 몇 배 많은 급여를 받으려면 생산성이 훨씬 높다는 것을 증명해야 사업주 불만도 줄어든다. 일자리는 경제적 이유뿐만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찾고 ‘일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이제 사업주와 청년까지 만족하는 묘수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할 때다.
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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