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록 설은 근거가 없다고 들었다. 다만 ‘5 대 0’ 구간이 있어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헌재는 4월 4일 윤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재판관 8명 전원이 파면에 동의하면서 헌재 결정의 수용력이 극대화됐고, 우리 사회 구성원 다수가 승복했다. 자연스레 구체적인 평의 과정에 관심이 쏠렸다. 헌재는 국가적 혼란을 줄이기 위해 평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다만 문형배 전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최근 강연에서 살짝 유추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여름이 오기도 전에 반팔을 입는 사람이 있고, 여름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긴팔을 입는 사람도 있다. 그걸 가지고 ‘너는 내 속도에 못 맞춰 주냐’ 이렇게 할 순 없다.”문 전 권한대행은 지난달 27일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강연에서 “표결이란 건 끝까지 해보고 정말 안 될 때 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 파면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상당히 있었다”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탄핵 인용론과 기각론을 모두 써둔 다음 각각의 입장에서 상대를 비판하면서 수정본을 계속 내다 보니 의견이 모아져 전원일치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문 전 권한대행이 특히 강조한 것은 ‘시간’이었다. 그는 “헌법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간만 주어진다면 틀림없이 한 지점으로 모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좀 걸린 것”이라며 “설득에는 그렇게 시간을 아낄 필요가 없다”고 했다.
문 전 권한대행의 강연과 그 법조인의 분석은 일부 맞닿아 있었다. 법조인은 분석의 근거를 대지 않았고, ‘5 대 0’ 구간이 정말 있었는지도 확인되진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공히 무게를 두고 강조하고 분석한 것은 ‘시간’이었다. 재판관 다수가 설사 의견을 정했더라도 소수 재판관이 의견을 정하거니 만장일치가 될 때까지 시간을 들여 기다리며 설득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혔다. 그리고 문 전 권한대행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강조했다.“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게 설득이라고 본다. 짐짓 ‘너와 나는 생각이 다르다’고 하는데 며칠을 계속 얘기해 보면 별로 다른 것도 없다.”행정·의회권력을 모두 거머쥔 정부·여당에 시간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소수 야당이 된 국민의힘은 투쟁만이 유일한 무기일 수도 있다. 다행히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모두 통합의 필요성엔 뜻을 같이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과 여야 모두 설득에는 시간을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 계속 얘기하고 설득하다 보면 별로 다른 게 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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