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실 비율이 높은 단지 가운데 얼마 전 기업회생 절차(법정관리)에 돌입한 신동아건설이 지은 단지도 있었다. LH는 2008, 2009년 신동아건설의 미분양 단지 2곳을 잇따라 사줬다. 하지만 신동아건설은 끝내 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2010년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워크아웃 졸업까진 9년이 걸렸다. 그로부터 5년 뒤 올해부턴 법정관리를 받고 있다. 전례 없는 정부의 지원을 받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글로벌 금융위기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요즘 건설업계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지금이 더 어렵다”는 말이 많다. 악성 미분양이 11년 만에 최대 수준으로 늘고 연초부터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건설사가 잇따르면서 줄도산 공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15년 만에 LH를 통해 악성 미분양을 사들이기로 한 것도 후방 연쇄 효과가 큰 건설업이 흔들리면 일자리 등 실물 경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위기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건 LH의 미분양 매입은 절대 좋은 대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축 빌라 등을 매입해 공공임대로 활용하는 LH가 악성 미분양을 사주는 게 그리 대수냐고 여길 수 있지만 그 성격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매입임대 사업으로, LH가 수요가 확실한 곳 위주로 골라 매입할 수 있다. 하지만 악성 미분양은 오랫동안 시장에서 팔리지 않은 물량이다. 나중에 분양 경기가 살아나면 잘 팔릴 수도 있지만 그런 알짜를 선뜻 LH에 넘길 건설사는 많지 않다. 결국 악성 재고만 LH가 떠안을 가능성이 짙다.LH는 미분양 매입에 예산 3000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매입한 미분양 주택은 공공임대로 활용할 예정인데, 여기에 입주할 사람들이 낸 보증금도 재원으로 끌어다 쓸 계획이다. 결국 국민 돈으로 악성 미분양을 사주는 셈이다.
악성 미분양 문제의 가장 큰 책임은 건설사에 있다. 분양 시장이 과열됐던 4, 5년 전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게 문제의 씨앗이다. 이런 사업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해준 금융권, 인·허가를 내준 지방자치단체도 문제를 키운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직접 책임이 없는데 구원투수로 재등판한 LH는 지금 상황이 답답할 수 있다. 일단 마운드에 오른 만큼 수요가 확실한 알짜 매물을 골라 매입해야 한다. 그런 매물이 없다면 굳이 3000채라는 목표 물량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 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 LH가 미분양을 사들여야 하는 상황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주택 시장의 구조를 바꾸는 데 있다. 스스로 살아남기 어려운 건설사까지 공적자금을 투입해 연명시키는 건 이제 그만해야 한다. 이런 구조개혁이 따르지 않는다면 LH 미분양 매입은 건설업계가 위기에 빠지면 결국 정부가 구제해 준다는 나쁜 선례로 남을 뿐이다.김호경 산업2부 차장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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