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한미 연합훈련을 앞두고 군 내부에선 사기 저하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12·3 비상계엄 여파로 그간 국민 보호나 대북 대비 태세 유지를 위해 진행했던 훈련들이 다른 의도를 가진 불순한 모의로 오인받자 군 생활에 회의를 느낀다는 군인도 많다. 한 장교는 “당장 다음 달 훈련에서 북한의 기습 남침에 따른 전시 전환 절차 중 하나로 계엄 실행 연습을 할 텐데 이 역시 2차 계엄 준비로 오해받을까 염려된다. 그렇다고 이를 안 하면 직무유기라고 할 것 아니냐”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계엄 사태와 관련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등으로 기소된 군 지휘부는 50만 장병 중 극소수다. 그러나 40여 년에 걸쳐 군부 통치 트라우마를 극복해 온 국민 입장에선 극소수라도 군이 또다시 정치에 개입한 건 민주화의 역사를 통째로 갈아엎는 듯한 충격이었다. 2024년에도 군이 정권 유지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비상식을 보여준 계엄 사태는 개입한 군인 수를 떠나 군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되기 충분했다.
다만 계엄의 충격이 다소 진정된 지금, 군 전체가 불신받는 현 상황이 누구에게 유리한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상적인 훈련에 대한 야당의 의혹 제기가 군 내부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잇단 의혹 제기에 일부 장병 역시 훈련 시행의 진짜 목적을 두고 군 지휘부를 불신하게 되고, 이는 곧 군 전반의 지휘체계 약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계엄 이후 군을 불신하게 만든 대표적인 사례는 무인기 북풍 의혹이다. 지난해 10월과 12월 경기 연천이나 파주 등 군사분계선(MDL) 인접 지역에서 우리 군 무인기가 잇달아 추락한 채 발견된 것을 두고 북풍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해 10월 평양에서 발견된 무인기는 계엄 선포 명분을 만들기 위한 북풍 유도용으로 우리 군이 보낸 것이고, 그 외 우리 지역에서 발견된 무인기도 비슷한 명분으로 날렸다가 추락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그러나 우리 무인기가 북한 인접 지역에서 발견되는 것은 군사 작전상 당연한 일이다. 2023년 11월 9·19 남북 군사합의 파기 이후 무인기 비행금지구역이 사라지면서 MDL과 비교적 인접한 지역에서 대북 정찰 훈련이 재개됐다. 그간 후방에서 날려야 했던 사단급, 대대급 무인기 등이 실제 작전지역으로 되돌아온 것. 훈련이 대대적으로 재개된 만큼 추락한 무인기가 다수 발견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의 활약이 부각되는 등 현대전이 드론전 양상을 보이면서 우리 군의 드론 훈련도 지난해 대폭 늘어났다. 군 관계자는 “전방 정찰용 무인기를 전방에서 운용했다고 북풍 유도 의혹을 제기하는 건 정상적인 군사 훈련에 정치 논리를 들이대 훈련을 위축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평양 무인기의 경우 우리 군이 하지 않았더라도 ‘하지 않았다’고 확인해 주는 건 북한에 유리한 것으로 북한이 사실관계를 몰라 진을 빼게 만드는 것 자체로 전략적 이점이 있다”며 “다만 우리 지역에서 발견된 무인기까지 북풍 유도로 몰아가는 건 정상적인 대북 정찰 작전까지 하지 말라는 것으로 감시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의혹 제기”라고 했다.
이 외에도 국군방첩사령부가 한미 연합훈련 기간 줄곧 해온 전시 계엄 선포 시 합동수사본부 편성 연습이나 국가 지정 대테러 부대인 특전사가 테러 대비 태세 확립을 위해 수행해 온 국가 중요시설 헬기 착륙 장소 점검 등 부대 고유의 임무 숙달 연습을 계엄 모의를 위한 것으로 몰아간 사례도 있다. 국군정보사령부가 북한 군복을 구매한 것을 두고도 북풍 공작 의혹이 제기됐지만 정보사는 물론 일반 부대도 훈련 효과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북한 군복이나 총기류 등 이른바 ‘적성 물자’를 교보재로 비교적 흔하게 사용한다.역사를 40여 년 전으로 돌린 계엄 가담 핵심 군인들을 정확히 가려낸 뒤 단죄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그 화살이 우리 군 절대다수인 ‘비계엄군’의 정상적인 임무 수행까지 망설이게 한다면 그 피해는 국민이 받을 수밖에 없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일에도 핵무력 강화 방침을 밝히며 긴장을 고조시켰다. 위법한 계엄에 적극 가담한 이들을 일벌백계해 다시는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못하게 하되 비계엄군 사기는 보호하는 분리 전략은 대한민국 안보를 위해 당장 필요한 전략이다. 대한민국이 위기일 때 국민을 지키는 건 결국 계엄과 무관하게 묵묵히 임무를 수행해 온 대다수 군인이다.
손효주 정치부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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