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9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WFT25 세포배양식품 포럼’이 열렸다. 이 포럼은 월드푸드테크협의회와 서울대 월드푸드테크창발센터가 공동 주최했는데, 후원기관으로 경상북도와 의성군이 이름을 올렸다. 참석자 대부분도 '경북 의성군'이 세포배양식품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대도시도, 바이오 산업 중심지도 아닌 인구 약 5만 명(5월 말 기준 4만8,377명)의 의성군은 어떻게 세포배양식품이라는 첨단 식량 산업의 지원에 나섰을까?
경북 의성군은 지난해 4월 30일 국무총리 주재 규제자유특구위원회에서 ‘세포배양식품 규제자유특구’로 최종 지정됐다. 규제자유특구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신기술에 기반한 신산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비수도권 지역을 대상으로 지정하는 제도다. 특구에 지정되면 각종 규제가 유예되거나 면제된다. 경북 세포배양식품 규제자유특구는 경북 의성 철파리·원당리 일원의 의성바이오밸리산업단지에 위치해 있다. 지정기간은 2024년 6월부터 2028년 12월까지 4년 7개월간이며, 사업비는 총 208억 원(국비 129억 원, 지방비 61억 원, 민간 18억 원)이다. 현재 경상북도에는 의성 세포배양식품 특구를 비롯해 △안동 산업용 헴프(HEMP) △김천 스마트그린물류 △포항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경산 전기차 무선충전 등 모두 5개의 규제자유특구가 지정되어 있다.
의성군은 이미 2015년부터 세포배양 관련 바이오 인프라를 다져온 지역이다. 특구 지정으로 살아있는 동물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고기를 생산하는 ‘배양육’ 산업의 실증과 상용화를 위한 국내 핵심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의성군은 두 가지 실증사업(식품용 세포은행, 세포배양 대량 생산·상용화)을 핵심 축으로 특구를 운영 중이다. 지난 5월 28일에는 의성세포배양산업지원센터에서 경북테크노파크를 비롯해 관련 9개 기업 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세포배양식품 규제자유특구 사업의 본격적인 추진을 알리는 킥오프 회의가 열렸다.
의성군이 세포배양식품의 전진기지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김주수 군수의 의지도 있었다. 김 군수는 농림부 축산국장, 농림부 차관, 서울시 농수산물공사 사장 등을 역임한 ‘농업통’이다. 김 군수는 이날 환영사 대독을 통해 “세포배양식품 산업은 단순한 식품이 아닌 국가 식량안보와 직결된 미래 산업”이라며 “의성이 중심이 되어 대한민국의 먹거리 산업 지도를 다시 그려가겠다”고 밝혔다.
김은미 경북테크노파크 센터장은 이날 포럼에서 “의성은 전용 축사, 클린룸, 2000리터급 대량배양 시스템까지 갖춘 연구지원센터를 통해 세포배양식품 산업의 테스트베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포배양식품의 안전성도 중요하지만, 사업을 추진하면서 소비자 심리 장벽을 넘는 것이 더 큰 어려움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포럼에는 특구사업자인 경북테크노파크, 씨위드, 다나그린 등 세포배양식품 관련 기업 대표들이 발표에 참여했다. 포럼은 세포배양식품 기업들의 산업 동향 발표와 정부 정책·생태계 구축을 주제로 한 두 개의 세션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심플플래닛, 씨위드, 스페이스에프, 한화솔루션 등 주요 기업들이 최신 기술과 시장 흐름을 소개했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서울과학기술대, 연세대, GFI(Good Food Institute), 경북테크노파크 등 정부와 학계 관계자들이 정책 지원 전략을 논의했다.
정일두 심플플래닛 대표는 “한국은 세포배양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규제로 인해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며 “규제샌드박스를 활용해 이 분야의 규제를 완화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규제샌드박스는 신기술을 활용한 신제품·서비스를 일정 조건(기간·장소·규모 제한) 아래 시험·검증하거나, 시장에 우선 출시할 수 있도록 현행 규제를 유예하거나 면제해 주는 제도다. 심플플래닛은 현재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학교 급식에 단백질·지방 원료를 활용한 세포배양식품 사업을 진행 중이다. 구옥재 한화솔루션 상무도 ‘세포배양식품의 글로벌 흐름과 전략’이란 주제 강연에서 “규제완화를 통해 세포배양 분야의 글로벌 협업의 장을 연 싱가포르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월드푸드테크협회는 이번 포럼을 시작으로 △개인맞춤형식품(과천·춘천) △푸드로봇(포항) △식물기반식품(익산) △푸드업사이클링(나주) 등 분야별 지역 포럼을 차례로 개최할 예정이다. 오는 10월에는 대규모 컨퍼런스 및 엑스포도 준비 중이다. 이기원 월드푸드테크협의회 공동회장(서울대 교수)은 “대한민국은 푸드테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를 잘 육성한다면 미래 대한민국의 대표 산업은 푸드테크 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