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영화감독 소라 네오 "역사 반성 안하면 같은 일 또 생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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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 연출…"조선인 학살 근본원인 사라지지 않았다는 두려움 있어"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 아들…"영화 속 테크노 음악은 제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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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피엔드' 감독 소라 네오

[ⓒ Aiko Masubuchi. 영화사 진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역사를 제대로 보고 반성하지 않는다면, 미래에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를 보면서 많이 느꼈어요. 이와 관련된 이야기도 해보고 싶었죠."

영화 '해피엔드'(Happyend)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일본의 소라 네오(空音央) 감독은 24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영화를 만든 계기를 이같이 말했다.

'해피엔드'는 가까운 미래 일본 도쿄를 배경으로 고등학생 유타(구리하라 하야토 분)와 코우(히다카 유키토), 아타(하야시 유타), 밍(시나 펭), 톰(아라지) 등 '절친 5인방'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이들 고등학생이 우정과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청춘 영화의 성격을 기본적으로 가지면서도,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시민을 억압하는 체제를 조명하는 우화의 모습도 보인다. 고등학생 코우가 4대 재일조선인으로서, 학교와 사회 내에서 차별받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영화에는 톰을 비롯해 다양한 인종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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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피엔드' 속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소라 감독은 한때 일본에서 나타난 헤이트 스피치가 영화 제작의 배경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헤이트 스피치를 보고 들으면서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벌어진 조선인 학살을 공부했다.

일본은 현재 헤이트 스피치 금지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소라 감독은 일본이 여전히 제대로 된 역사 반성을 하고 있지 않다면서 우려를 나타냈다.

"1923년 간토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가짜뉴스가 돌면서 그런 참상이 일어난 건데, 지금도 일본에서는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도쿄 주변의 가와구치 시에 있는 쿠르드족 난민이 일본인에게 나쁜 짓을 한다는 가짜뉴스가 엑스(X·옛 트위터)에 돌아요."

소라 감독은 그러면서 "학살의 근본적 원인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두려움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여전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영화에서 차별받는 것으로 주로 묘사되는 캐릭터가 재일 조선인 코우인 점도 이런 이유가 반영됐다. 코우는 가지고 다닐 의무가 없는 특별영주자증명서를 매번 경찰에게 요구받는다.

그는 "몇 세대가 이어지는 동안 (재일조선인에게) 투표권이 없다는 제도적 차별점이 존재한다"며 "특별 영주권은 그 옛날 제국과 식민지 간에 있던 제도가 현대까지 이어져 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일본이라는 정체성은 제국주의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런 점들도 영화에 녹여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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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피엔드' 속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그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 2012년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등과 같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정치적으로 눈을 뜬 점도 영화 제작의 계기로 꼽았다.

미국에서 같이 학창 시절을 보내며 친하게 지낸 친구들과 정치적 의견의 차이로 멀어지게 된 경험이 영화에 반영된 것이다.

소라 감독은 "대학 때 제 기반이라고 할 정도의 친한 친구가 있었지만, (정치적 성향 등이) 안 맞아 대화도 안 나누게 돼 슬펐다"면서 "이것이 이 영화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영화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둘도 없는 사이로 지낸 유타와 코우는 반정부 시위를 놓고 다른 입장을 보인다.

"관객분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에게 연락 한번 해볼까 하는 기분이 든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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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피엔드' 속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영화 속 학교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학생들을 통제하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소라 감독은 이에 관해 "AI와 로봇을 이용한 감시는 군사용으로 많이 활용되는 것"이라며 "눈앞에 보이는 폭력은 없지만, 시민들이 자기를 스스로 통제해가는 세상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절친 5인방' 중 아타를 맡은 배우 하야시 유타를 제외하고 나머지 배역을 한 번도 연기를 해보지 않은 배우들로 채운 점도 관심을 끈다.

소라 감독은 "제가 우선으로 봤던 것은 5명의 '케미스트리'(화학작용)"이라며 "실제 5명이 같이 있을 때 정말 친한 친구가 되는 기적이 제게 있었다"고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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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피엔드' 속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해피엔드'는 소라 감독의 첫 장편 극영화다. 유명 작곡가 고(故)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의 아들이기도 한 그는 사카모토의 마지막 연주를 담은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로 2023년 열린 제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소라 감독은 영화 음악에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는지 묻는 말에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한다"면서도 "영화에 많이 나오는 테크노 음악은 클럽 음악을 좋아한 제 취향"이라고 답했다.

차기작에 관해서는 "세 작품 정도 진행하고 있다.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중"이라며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유머러스함은 반드시 집어넣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영화 '해피엔드'는 오는 30일 개봉한다. 113분. 15세 이상 관람가.

encounter24@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4월24일 19시29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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