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은 대체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된다. 교육은 창의성을 강조하고 기업은 세상에 없던 혁신을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틀을 깨라”, “정답을 의심하라”는 메시지는 하나의 시대정신에 가깝다.
하지만 고정관념은 생각보다 복잡한 개념이다. 같은 대상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다른 고정관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에게 상식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낡은 관성이고, 나에게 혁신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무질서로 여겨진다.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도 사람은 스스로 차별하지 않는 선량한 자라고 믿지만, 혹자의 관점에서는 그가 차별적인 사람일 수 있다고 말한다. 고정관념과 차별을 바라보는 인식 역시 시대와 환경, 맥락에 따라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은 특정 대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오랜 시간 축적되면서 형성되는 집단적 판단이다. 그 판단을 옳고 그름으로 재단하기 어려울뿐더러, 사회는 매 순간 모든 것을 새롭게 판단하며 움직일 수 없다. 그렇기에 고정관념은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이 복잡한 제도 속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공용어 역할을 한다. 줄을 서고, 약속 시간을 지키고, 계약은 이행해야 한다고 믿는 행동은 사회 구성원이 공유한 기대와 합의의 결과다.
물론 이것이 기존 질서에 순응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모든 고정관념을 지켜야 한다면 혁신은 존재할 수 없고, 사회는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기 쉽다. 지난 13년 동안 스타트업 업계에서 일하며 만난 수백 명의 창업가가 바꾸려 한 것은 사회의 모든 고정관념이 아니라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규범이었다.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통한 혁신의 과정에서도 고객과의 신뢰, 제도에 대한 이해, 문제 해결에 대한 집요함과 같은 기본적인 원칙은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진다. 혁신은 모든 규칙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바꿔야 할지 보는 안목에 가깝다.
이제 고정관념을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은 달라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고정관념을 편견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해왔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고정관념을 따를 것인지, 깨뜨릴 것인지가 아니라 그것이 편견인지 사회적 합의인지 구분하는 일이다.
오늘날 많은 사회적 논쟁도 이 질문으로 수렴할 수 있다.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갈등이 지속될수록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이 시대에 뒤처진 편견인지, 아니면 여전히 유효한 사회적 합의인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고정관념을 깨라는 말이 시대정신이 된 지금, 먼저 의심해봐야 할 것은 어쩌면 ‘고정관념은 모두 깨야 한다’는 생각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6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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