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반도체 첨단 공정 경쟁이 다시 불 붙는다. 삼성전자·TSMC·인텔이 2나노미터(㎚) 공정을 모두 하반기 양산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공지능(AI)과 맞물려 급성장하는 AI 반도체 칩 수요에 첨단 공정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 터라 주목된다. 최첨단 공정인 2㎚ 공정 성패에 따라 AI 시장 주도권이 누구 손에 쥐어질지 판가름 날 수 있다.
지금까지 최첨단 공정은 속도전이었다. 누가 먼저 가장 얇은 반도체 회로 선폭을 제공하느냐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역량을 가늠하는 척도였다.
지난 2022년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3㎚ 파운드리 양산에 성공했을 때가 꼭 그랬다. 특히 10여년간 대세로 여겨졌던 '핀펫' 시대를 마무리하고 '게이트올어라운드(GAA)'를 연 첫 사례라 더욱 주목을 받았다. GAA는 반도체 트랜지스터 핵심 구성요소인 게이트와 채널 접합면을 늘려, 핀펫 대비 반도체 성능을 끌어올리는 구조다. 삼성전자가 처음 도입했다.
당시 3㎚ 양산 거점이었던 삼성전자 화성캠퍼스는 인간이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첨단의 기술이 실현된 곳으로도 회자됐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는 당시 3㎚ 공정을 가동하지 않았고, GAA 경우 2㎚에서나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파운드리의 장밋빛 미래가 그려지던 시기다.
그러나 시장의 선택은 달랐다. 최초의 기술보다는 '안정'을 택했다. 3㎚ 수율 확보에 난항을 겪었던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는 시장 점유율이 지속 하락했다. 반면 삼성보다 한발 늦었던 TSMC는 핀펫 공정임에도 안정적 수율을 무기로 고공행진 중이다.
삼성이 3㎚ 공정 양산 당시 11~13% 수준이었던 파운드리 점유율은 지난해 말 8.1%까지 떨어졌다. 반면 TSMC는 67.1% 점유율을 자랑한다. 파운드리 업계 1·2위인 두 회사의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엔비디아·애플·퀄컴 등 반도체 파운드리 주요 고객들은 TSMC만 찾고 있다. 파운드리 병목 현상이 일어날 정도다.
수년 간 고전을 면치 못하는 삼성 파운드리를 보면, 속도만이 최선은 아니라는 교훈을 얻게 된다. 당연히 고객은 보다 뛰어난 성능의 반도체를 더 빨리 얻고 싶겠지만 그것보다 중요 시하는 것이 안정성, 즉 신뢰성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반도체 시장에서 이제 '세계 최초=세계 최고'는 항상 들어맞는 등식이 아니다. 칩 하나 당 수천만원에 달하는 AI 반도체 시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워낙 고가다 보니 제품 신뢰성이 최고 가치로 부상했다. 반도체 파운드리에서 신뢰성은 곧 수율 관리와 직결된다. 수율 관리가 안된 설 익은 기술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자칫 기존 고객도 잃을 수 있어서다.
삼성이 3㎚ 양산에 돌입했을 때 업계 고위 관계자의 평이 떠오른다. “신공정으로 양산하는 초기, 적정 수율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수율로 입증해야할 것”이란 말이었다.
삼성이 2㎚ 양산을 개시할 때도 똑같은 말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과 TSMC, 인텔 중 누가 세계 최초로 2㎚ 양산에 성공할지는 지켜봐야하겠지만, 고객은 최초보다는 '안정적인' 그리고 '신뢰할 만한' 파운드리를 선택할 것이란 건 짐작할 수 있다. 삼성 파운드리가 회복하려면 고객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