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기술 역량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자리잡았다. 우리 정부가 'AI 3강'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채택하고, 소버린 AI 개발, 우수 인재 양성,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 확대 등에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는 것은 세계적 흐름을 반영한 전략적 대응이다.
특히 산업 현장에 AI를 도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생산성 혁신과 산업구조 재편을 앞당기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산업AI는 생산 공정의 일부를 자동화하는 차원이 아니다. 제품 기획과 설계, 품질 개선, 설비 유지보수, 수요 예측과 재고 관리 등 전 주기에 걸쳐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AI 기반으로 분석, 활용하면 고도화된 의사결정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산업AI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수준과 실제 활용 수준과의 간극은 매우 크다. 대한상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80%는 AI 도입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30%만 실제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제조업으로 좁히면 AI 활용률은 23% 수준으로 더욱 낮아진다. AI 인재와 인프라 부족, 비용 부담, 데이터 보안 등이 걸림돌로 지적된다.
더 큰 문제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중국은 이미 AI 기반의 스마트 제조 체계로 전환을 시작했으며,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우리의 주력 첨단산업 분야에서 급속히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우리 제조업도 위기 의식을 갖고 AI를 무기 삼아 생존을 위한 대전환에 나서야 한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산업디지털전환촉진법에 따른 사업을 수행하는 전문기관이다. 제조기업이 AI를 보다 쉽게, 효과적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산업AI 기반의 제조혁신 지원 프로그램을 다수 운영한다.
특히 제조업은 산업 분야마다 특수성이 뚜렷해 데이터의 복잡성, 이질성이 매우 크다. 제조 현장에 AI를 효과적으로 적용하려면 업종별로 특화된 데이터 묶음을 모으고, 산업별 전문적 지식을 접목한 솔루션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KIAT는 산업 AI 도입에 필요한 특화 데이터 수집 및 전처리를 지원하고, 기업별 산업AI 맞춤형 솔루션을 개발해 실증 기회를 제공한다. 부족한 업종별 제조 데이터를 지원하고 경제적 성과를 조기에 창출할 수 있도록 제조AI솔루션지원센터, AI자율실험실도 지원하고 있다.
또 업종별 특화지식과 수요 기반 문제 정의를 바탕으로 AI 전문 연구기관, 공급기업, 수요기업 간 협업을 촉진하는 산업AI 생태계 조성에 힘쓴다. 예를 들어 자동차, 정밀화학, 금형 가공과 같은 세부 제조 영역에서 공통으로 활용 가능한 AI 모델과 표준 데이터를 구축해, 유사 업종 내 기업들이 빠르게 기술을 확산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앞으로는 산업 현장 문제 해결용 AI 에이전트 기술개발과, 다양한 산업군의 데이터 연계와 상호운용성을 강화할 수 있는 생태계 지원이 필요하다. 중견·중소기업의 AI 도입을 가속화하기 위해 업종별 실증 기반 컨설팅과 AI 활용 교육·훈련 지원도 확대되어야 한다.
AI는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의 미래를 바꾸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산업AI는 우리 경제를 근본적으로 뒤바꿔놓을 것이다. 제조업 비중이 매우 높은 대한민국이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기존 강점을 유지하면서 AI 시대에도 앞서 나가려면 산업AI를 도입하고 활용하는 기반과 생태계부터 제대로 갖춰야 한다. 제조기업이 AI를 활용하고 혁신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정부와 유관기관은 정책적, 기술적 지원을 체계화하고 기업과의 협업도 강화해야겠다.
전유덕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산업혁신본부장 jyd@kia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