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박과학연구센터는 최근 최대 4000m 수심의 해저 케이블을 자를 수 있는 절단기를 개발했다. 이 장치는 심해 잠수정에 장착해 400기압의 수압에서도 로봇 팔로 다이아몬드 코팅 연삭 휠을 이용해 케이블을 절단한다. 지상 실험에선 강철과 고무, 폴리머 피복으로 이뤄진 60㎜ 두께 케이블을 자르는 데 성공했다.
이 장치의 공식적 개발 목적은 해저 채굴 및 구조 작업이다. 하지만 각국 정부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해저 케이블을 절단해 통신망을 교란하는 군사적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달 동안 발트해 일대에서 벌어진 해저 케이블 절단 사고 역시 인위적 행위라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국가 간 긴장 관계가 고조되면서 해저 케이블은 안보적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투자 대상으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제 통신 99% 차지하는 해저 케이블
해저 케이블은 말 그대로 바다 밑에 설치한 통신용 케이블이다. 역사는 19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50년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최초의 전신용 해저 케이블이 설치됐다. 1858년에는 영국과 미국을 잇는 해저 전신 케이블이 개통됐다. 이전까지 선박 우편에 의존해 열흘 이상 걸리던 대륙 간 연락을 몇 분 이내로 단축해 통신 혁명을 촉발했다.
20세기에는 전화 통화를 전달하는 동축 케이블로, 1990년대 이후에는 광섬유 기반 디지털 케이블로 진화했다. 현재의 해저 케이블은 수㎝ 굵기로 내부에 광섬유가 들어 있다. 이를 폴리에틸렌 외피와 방수 테이프 등이 둘러싸 해수 압력과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한다. 육지와 가까운 연안 해역에선 추가 장갑을 덧대 배의 닻이나 지각 변동에 견디도록 보강했다. 대표적인 해저 케이블 제조·설치 업체로는 미국 서브컴, 프랑스 ASN, 일본 NEC 등을 꼽을 수 있다. 한국에선 LS전선의 자회사인 LS마린솔루션이 대표적이다.
현재 국제 전화 통화, 인터넷 데이터, 금융 거래, 군사 통신 등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해저 케이블을 통해 실시간으로 오간다. 하루 10조달러가 넘는 금융 거래가 해저 케이블에 의존해 이뤄진다. 전 세계 해저엔 400개가 넘는 케이블이 대양과 연안을 따라 설치돼 있다. 아일랜드와 영국을 연결하는 131㎞ 길이의 셀틱스커넥트 케이블부터 아시아와 미주 대륙을 연결하는 2만㎞ 규모 케이블도 있다. 전 세계에 뻗어 있는 해저 케이블의 총길이는 약 130만㎞로 지구 둘레의 30배 이상이다. 위성통신이라는 대안도 있지만 전송 용량의 한계와 속도, 품질 문제로 해저 케이블이 국제 통신의 98~99%를 차지하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해저 케이블의 지연은 60~120㎳에 불과하지만 위성통신은 지구와 위성 간 거리 차로 240㎳가량의 지연이 발생한다. 주고받을 수 있는 데이터 역시 해저 케이블은 초당 수 테라비트(Tbps)에 달하는 반면 위성통신은 초당 기가비트(Gbps) 단위를 벗어나기 어렵다. 위성통신은 해저 케이블의 보완재 이상 역할을 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바닷속에서도 첨예한 미·중 갈등
해저 케이블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이를 둘러싼 기업과 국가 차원의 투자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여러 국가 통신사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투자해 해저 케이블을 설치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한국에서 일본을 거쳐 미국까지 연결되는 해저 케이블이라면 국가별로 통신사들이 투자해 지분만큼 케이블 용량을 나눠 쓰는 식이다.
최근엔 구글,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가 해저 케이블을 직접 구축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클라우드 서비스 확산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이용자 증가로 데이터 사용량이 폭증한 데 대응하기 위해서다. 메타는 지난 2월 5만㎞ 길이의 해저 케이블을 구축하는 ‘프로젝트 워터워스’를 발표했다. 수십억달러를 들여 미국과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연결하는 세계 최장 길이의 케이블이다.
정부 차원의 경쟁도 치열하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해저 케이블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자국과 동맹국의 기밀 통신이 중국에 노출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중국 업체가 해저 케이블을 건설하거나 미국과 직접 연결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2018년 아마존과 메타는 미국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을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 구축을 위해 중국 국유 통신사 차이나모바일과 손잡았다. 하지만 2020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막았다. 이미 1만2000㎞의 해저 케이블이 깔렸지만, 차이나모바일이 컨소시엄에서 빠져 결과적으로 사업이 좌초됐다.
2021년에는 세계은행이 태평양 섬나라 세 곳을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 구축을 추진하다 무산됐다. 해저 케이블 분야의 강자로 급부상한 중국 HMN테크와의 계약을 피하려는 미국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HMN테크는 과거 화웨이 계열사 화웨이마린으로, 2019년 기준 해저 케이블 시장 점유율이 15%에 달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화웨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2019년 중국 광통신 기기 제조업체 헝퉁광전에 경영권이 매각됐다. 회사 이름도 HMN테크로 바꿨다. 중국도 디지털 실크로드 구상의 일환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지의 해저 케이블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차이나텔레콤, 차이나모바일 등 국유 통신사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첨병 역할을 맡고 있다.
안보 자산 격상…고의적 절단 사례도 증가
해저 케이블 망은 국가의 지정학적 자산으로서 주목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특히 군사적 충돌이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해저 케이블은 전략 표적이 될 수 있다. 상대국의 지휘 통신을 교란하고 경제 활동을 멈추게 하는 효과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고의적 절단이 의심되는 사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작년 12월 북유럽 발트해에선 한 유조선이 투하한 닻에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간 해저 케이블이 끊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2022년부터 3년간 발트해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의 해저 케이블 손상이 잇따라 러시아의 의도적 공격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올해 1월에는 대만 북부 해역에서 중국 선적 화물선이 태평양 횡단 해저 케이블을 훼손하고 도주해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