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임차료보다 비싼 비용이 매달 클라우드 서비스료로 나가고 있습니다.”
바이오기업 A사 대표는 14일 “인공지능(AI) 신약 개발에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와 정부 지원이 매우 부족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영세한 국내 AI 신약 개발사가 AI 플랫폼 개발의 핵심인 데이터센터를 갖추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 때문에 대부분 기업이 울며 겨자 먹기로 매달 수천만원을 들여 글로벌 기업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하는 실정이다.
정부는 올해 1월 국가바이오위원회를 출범해 바이오 분야 공공기관의 데이터를 개방하고, 그래픽처리장치(GPU) 3000장 규모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이미 설립된 공공 데이터센터도 활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대전 어은동에서 운영하는 국가슈퍼컴퓨팅센터는 다양한 이용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한번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24시간으로 제한한다. 업계 관계자는 “사용시간 제약 때문에 며칠 만에 끝날 작업이 몇 달씩 걸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토로했다.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를 동시에 학습해야 하는 신약 개발은 정보의 복잡도가 높아 학습에 통상 수주가 소요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제약·바이오산업 기술은 미국 대비 2.2~2.5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수조원의 매출을 내는 블록버스터급 신약이 쏟아지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그간 제네릭(복제약) 등에 집중하다 이제 막 신약 개발에 나서고 있다. AI 플랫폼 도입은 이런 격차를 빠르게 따라잡을 대안으로 떠오른다. AI를 도입하면 기존 신약 개발의 기간과 비용을 절반 수준으로 단축할 수 있어서다.
의료 데이터 활용도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에 따라 의료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 제약이 큰 만큼 법적 규제의 허들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2022년부터 머신러닝 분석에 활용 가능한 플래그십 데이터를 확보하는 브리지2AI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의료 데이터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글로벌 임상 순위 4위인 만큼 신뢰도 높은 의료 데이터가 빠르게 쌓이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