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랭킹 1위 고진영(30)은 올 시즌을 앞두고 훈련 및 시즌 일정을 통째로 바꾸는 변화를 택했다. 매년 2월 초까지 동계 훈련을 한 뒤 3월 초부터 시즌을 시작했지만, 올해는 동계 훈련을 생략하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개막전부터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가 1월 대회에 출전한 건 프로 데뷔 후 처음이다.
고진영의 결단은 부활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2018년 LPGA투어에 데뷔한 뒤 매년 1승 이상씩 쌓았던 그가 처음으로 우승 없는 시즌을 보냈기 때문이다. 고진영의 스승인 이시우 코치는 “실망스러운 한 해를 보냈다고 생각한 고진영은 휴식 없이 훈련을 바로 시작했다”며 “지난해 11월과 12월에 스윙 교정 등을 하면서 새 시즌 준비를 보다 빨리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고진영의 루틴 변화는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9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브레이든턴CC(파71)에서 끝난 LPGA투어 2025시즌 두 번째 대회인 파운더스컵에서 최종 합계 17언더파 267타로 4타 차 준우승을 차지하면서다. 지난주 개막전 공동 4위에 이어 2주 연속 우승 경쟁으로 부활의 신호탄을 쏜 고진영은 “작년에 힘겨운 시즌을 보냈지만, 올해는 잘하고 있다”며 “시즌 최종전까지 이 기세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자평했다.
후반 보기 3개로 놓친 우승
고진영은 이날 전반까진 무결점 플레이를 펼쳤다. 1타 차 2위로 최종 라운드에 나선 그는 전반에 버디만 3개를 잡은 뒤 단독 선두에 올랐다. 이번 대회 첫날부터 마지막 날 후반 12번홀까지 66개 홀 연속, 지난주 포함 95개 홀 연속 노보기 행진을 이어가며 지난해 5월 코그니전트 파운더스컵 이후 1년9개월 만의 우승에 한 걸음 다가가는 듯했다.
그러나 13번홀(파4)에서 첫 보기가 치명적이었다. 세컨드샷을 그린 옆 벙커에 빠뜨린 고진영은 3m 파퍼트를 놓치면서 노보기 행진을 마감했다. 이 홀에서 노예림(24·미국)이 버디를 잡으면서 순위가 뒤집혔고, 흐름이 끊긴 고진영은 이후 2개의 보기를 추가해 우승 경쟁에서 멀어졌다. 고진영도 “보기가 뼈아팠다”고 돌아보면서 “(다음 대회인) 태국과 싱가포르 대회 때도 보기 없는 경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부활의 가능성을 확인한 고진영은 오는 20일부터 시작되는 혼다 LPGA 타일랜드에서 통산 16승에 도전한다. 이시우 코치는 “대회가 끝난 직후 고진영과 영상 통화를 하면서 보완할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며 “체력적인 면이 부족해 마지막에 집중력이 흐트러진 점, 아이언샷이 왼쪽으로 당겨지는 점 등을 가다듬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퍼터 바꾼 노예림, 생애 첫 우승
고진영과 우승 경쟁 끝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주인공은 교포 선수인 노예림이다. 이날 보기 없이 버디만 3개를 잡아 최종 합계 21언더파 263타를 적어냈다. 2020년 데뷔 이후 6번째 시즌 만에 211번째 대회에 출전해 생애 첫 우승을 거뒀다. 우승상금은 30만달러(약 4억3600만원)다.
노예림은 주니어 시절 주니어PGA챔피언십, US여자주니어챔피언십, 캐나다여자아마추어챔피언십 등 굵직한 대회에서 우승해 주목받았으나, LPGA투어에 뛰어든 뒤에는 지난 5시즌 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2023년엔 출전한 대회 절반을 커트 탈락하는 부진 끝에 퀄리파잉(Q) 시리즈를 다시 치러 LPGA투어에 복귀하는 부침을 겪었다.
노예림의 반등도 과감한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퍼팅 부진을 고민하던 그는 작년부터 빗자루처럼 긴 브룸스틱 퍼터로 장비를 교체했다. 노예림은 “퍼터를 바꾸고 나서 퍼팅이 나아졌고, 덩달아 샷도 좋아지면서 자신감도 높아졌다”며 “올해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을 해서 정말 기쁘다”고 했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