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 언젠가부터 생긴 버릇이 있다. 길에서 수녀들을 마주치면 휴대전화를 들어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검정이나 회색, 파랑, 갈색 수도복을 입은 이들의 모습은 소박하면서도 신비롭다. 한국뿐 아니라 콜롬비아, 멕시코,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찍은 사진들을 주로 나의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수녀 발견’을 뜻하는 ‘#nunspotting’이라는 해시태그를 다는데, 클릭해 보면 나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이 꽤 많다. 이 취미가 정확히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다닌 초중고교가 가톨릭 학교였던 영향인지도 모른다. 일곱 살 무렵부터 학교를 운영하던 예수회 신부들을 돕는 수녀들을 매일 볼 수 있었다. 이들은 크고 투박한 구두를 신고 언제나 말없이 무언가에 깊이 몰두해 있었다. 그중에서도 교내식당에서 우리가 점심을 다 먹었는지 살피던, 키가 작고 눈썹이 짙은 수녀님이 기억에 남는다. 빳빳하게 다린 검은 수녀복을 입고 가슴에는 커다란 은십자가를 달고 있었다. 아니면, 10대 시절 보고타의 한 미술관에서 본 18세기 그림들에서 시작된 취미인지도 모르겠다.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였던 시절에는 갓 선종한 수녀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는 풍습이 있었다. 그림 속 수녀들은 화관을 쓴 채 평온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기이할 만큼 아름다워서 콜롬비아에 갈 때마다 미술관을 찾게 만든다. 가톨릭교회는 여성의 서품을 허용하지 않는다. 수녀는 미사를 집전하거나 고해성사를 들을 수도 없다. 하지만 가톨릭 신앙의 상당 부분은 섬세하고 비밀스러운 이들의 봉사에 빚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스페인어권 문학사에서 가장 경이롭고 혁명적인 시집 중 일부도 수녀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아빌라의 테레사 성녀와 후아나 이녜스 데 라 크루스 수녀의 시가 대표적이다. 신비주의와 관능이 결합된 이들의 작품 세계는 수백 년 뒤 스페인 대중가수 로살리아에게로 이어져 새로운 음악으로 되살아났다. 우리는 늘 자신을 드러내고 남들이 봐주기를 기다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삶과는 정반대로, 눈에 띄지 않는 은밀한 삶을 사는 수녀들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을까. 올해 5월 한국에서 ‘올해의 세계 시민상(Global Citizen of the Year)’을 수상하고, 700여 명이 참석한 세계인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은 콜롬비아 ...
1996년 한국에 온 어떤 수녀[안드레스 솔라노 한국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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