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6위의 기적'…이일희, 꿈의 무대서 값진 준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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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한국시간) 미국 뉴저지주 갤러웨이의 시뷰베이코스(파71) 18번홀(파5). 이일희(37)의 두 번째 샷이 핀과 약 4m 거리에 떨어졌다. 이글퍼트를 넣으면 공동 선두로 올라서는 상황. 그러나 이일희의 퍼터를 떠난 공은 홀 왼쪽으로 살짝 빗나갔고 12년 만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우승 기회는 물거품이 됐다.

이일희는 이날 끝난 숍라이트LPGA클래식(총상금 175만달러) 최종 3라운드에서 버디 6개와 보기 3개를 묶어 3언더파 68타를 쳤다. 최종 합계 14언더파 199타로 우승자 제니퍼 컵초(미국·15언더파 198타)에게 단 한 타 뒤져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쳤다. 준우승 상금은 16만4136달러(약 2억2300만원).

< 미소 짓는 이일희 > 이일희가 9일(한국시간) 미국 뉴저지주 갤러웨이의 시뷰베이코스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숍라이트클래식 최종 3라운드 18번홀 그린을 걸어가며 웃고 있다.  AFP연합뉴스

< 미소 짓는 이일희 > 이일희가 9일(한국시간) 미국 뉴저지주 갤러웨이의 시뷰베이코스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숍라이트클래식 최종 3라운드 18번홀 그린을 걸어가며 웃고 있다. AFP연합뉴스

◇ 1위 컵초의 벽 못넘어

1타 차 단독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들어선 이일희는 2013년 퓨어실크-바하마클래식 이후 12년 만에 통산 2승 기회를 잡았으나 이날만 5타를 줄인 컵초의 벽을 넘지 못했다. 컵초는 마지막 홀에서 2.4m 버디퍼트를 성공시켜 우승과 함께 상금 26만2500달러(약 3억5700만원)를 받았다.

이날 전반의 부진이 발목을 잡았다. 이일희는 초반 7개 홀에서 보기만 3개를 쏟아내며 한때 순위가 10위권까지 밀렸다. 다행히 9번홀(파5)에서 첫 버디를 잡아 바운스백에 성공했고 후반 11번홀(파3)까지 세 홀 연속 버디를 몰아쳐 잃은 타수를 만회했다. 이후 14번홀(파4) 약 2m 버디퍼트에 이어 17번(파3)과 18번홀에서 연속 버디를 낚아 순위를 다시 끌어올렸다.

12년 만에 잡은 우승 기회를 놓친 이일희는 아쉬움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는 “컵초가 경기하는 걸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며 “TV로만 보던 선수인데 옆에서 함께 경기한 것 자체가 정말 멋진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독 선두로 경기를 시작해 많이 긴장했는데 마무리를 잘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 꿈은 계속된다

2010년 LPGA 투어에 데뷔한 이일희는 첫 승을 거둔 이후 어깨 부상과 그에 따른 슬럼프로 2018년 시드를 잃었다. 현재 세계 랭킹은 1426위. 그러나 이일희는 골프를 놓지 않았다. 골프가 잘 풀리지 않자 미국에서 대학을 마친 뒤 다른 업종(금융)에 취업도 해봤지만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골프’라는 생각에 필드로 돌아왔다. 이후 레슨프로로 활동하며 투어 우승자에게 주는 출전권을 활용해 1년에 한두 번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이일희는 이번 대회에서 우승의 꿈을 이루진 못했으나 2016년 9월 레인우드클래식 공동 9위 이후 약 9년 만에 톱10에 복귀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아울러 다음 대회 출전권도 받았다. 대회가 끝난 뒤 동갑내기 절친 신지애를 비롯한 주변 지인에게 “(너의 활약이) 내게 영감을 줬다”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는 이일희는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일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고 언제나 노력해온 것”이라며 “나는 모든 사람이 (나처럼) 골프를 즐기기를 바란다”고 하며 웃었다.

이날 76야드의 17번홀(파3)에서 56도 웨지샷으로 홀인원을 기록하는 등 6타를 줄인 김세영이 3위(12언더파)로 이일희의 뒤를 이었다. 김세영의 올 시즌 개인 최고 성적이다. 2020년 11월 펠리칸위민스챔피언십에서 통산 12승을 거둔 뒤 5년 가까이 우승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있는 김세영은 “홀인원 했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며 “좋은 기운을 받았고 다음 대회에 우승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임진희는 공동 5위(10언더파), 박금강은 공동 11위(9언더파)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 랭킹 1위 넬리 코르다(미국)는 공동 15위(8언더파)로 대회를 마쳤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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