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시작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의 2주간 방학 때 배소현은 스승 이시우 코치를 따라 영국에서 열리는 남자골프 메이저대회 디오픈으로 향했다. 지난 시즌 3승을 올리며 단숨에 투어 강자로 떠올랐지만 상반기에는 톱10 두 번에 그쳐 답답한 시간을 보낸 뒤였다.
영국에서 배소현은 스승과 함께 김주형의 갤러리를 하며 세계 톱플레이어 경기를 직관했다. 거친 링크스 코스에서 펼쳐진 세계 톱랭커의 다채로운 쇼트게임은 배소현의 시야를 넓혔다.
돌아온 배소현은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3일 강원 원주 오로라골프&리조트(파72)에서 열린 오로라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우승 상금 1억8000만원, 총상금 10억원) 최종 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5개 잡아내는 무결점 플레이로 오랜 기간 기다려온 시즌 첫 승과 우승 상금 1억8000만원을 품에 안았다.
◇“우승 없어도 괜찮아” 응원에 힘
배소현은 KLPGA투어를 대표하는 베테랑이자 롱런 선수로 꼽힌다. 많은 선수가 은퇴를 고민하는 31세에 생애 첫 승을 거두고 3승까지 내리 달리며 공동 다승왕에도 올랐다. 가녀린 체구에서 뿜어내는 장타와 안정적 퍼팅이 트레이드마크다.
작년 KLPGA투어가 배출한 대표 스타지만 올 시즌 상반기에는 다소 답답한 흐름을 보였다. 단단한 플레이, 반듯한 태도로 많은 후원사의 러브콜을 받은 배소현은 올해부터 메디힐 모자를 쓰고 투어를 했다. 출전한 14개 대회 모두 커트 통과했지만 우승이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최고 성적을 내고 맞은 새 시즌이어서 저도 모르게 부담을 느낀 것 같다”며 “최근 권오섭 메디힐 회장님이 ‘우승 안 해도 괜찮다. 다치지만 말고 하고 싶은 것 다 하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큰 힘이 됐다”고 털어놨다.
투어 휴식기에 찾은 디오픈도 그에게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이시우 프로는 “함께 김주형의 갤러리로 대회를 참관하며 내내 어프로치와 퍼트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며 “당시 선수들 영상을 분석하며 어프로치 기술을 고민하고 연습했다”고 귀띔했다.
◇완벽 어프로치로 무결점 플레이
배소현은 이날 고지원에게 1타 뒤진 단독 2위로 경기를 시작했다. 오로라골프&리조트는 전장이 긴 편이 아니지만 그린 주변에 해저드, 벙커가 자리 잡고 있어 그린을 정교하게 공략해야 한다. ‘아이언 걸’ 노승희, 이예원, 박지영 등이 최종 라운드에서 톱5로 뛰어오른 이유다.
KLPGA투어 대표 장타자 배소현에게는 장점을 활용하기 어려운 코스로 보였다.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 252야드로 투어 6위, 그린 적중률 75%로 14위다. 다만 퍼팅에서 라운드당 평균 30회로 투어 76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이번 대회 2라운드부터 배소현은 완벽한 쇼트게임을 앞세워 도약했다. 이날 배소현은 2타 차 선두였던 17번홀(파3)에서 티샷이 그린 옆 깊은 러프에 떨어졌지만 완벽한 어프로치로 공을 핀 1.5m 옆에 붙였고 파로 막아냈다. 이 홀에서 성유진이 버디를 잡아 1타 차로 격차가 좁혀졌지만 선두는 지켜냈다.
18번홀(파4)에서 피칭웨지로 친 두 번째 샷이 그린 경사를 타고 흘러 다시 한번 위기를 맞았지만 투 퍼트로 막아내 우승을 확정 지었다. 배소현은 “어제 1m 안팎 거리의 버디 퍼트를 놓치고 셋업이 흐트러진 것 같아 점검을 꼼꼼하게 했다”며 “어제의 실수가 보약이 된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 대회로 배소현은 ‘초대 챔피언 전문’ 타이틀도 따냈다. 지난해 8월 신생 대회 더헤븐마스터즈에서 시즌 2승을 올린 그는 이번에도 신생 대회인 오로라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시즌 첫 승을 거두며 또 하나의 초대 챔피언 타이틀을 챙겼다.
원주=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