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당연한 것들의 힘

1 week ago 7

[한경에세이] 당연한 것들의 힘

얼마 전 미국 보스턴의 한 병원에서 진행된 흥미로운 실험 이야기를 접했다. 외과의사인 아툴 가완디 하버드 의대 교수는 수술 중 사고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아주 간단한 체크리스트를 도입했다. 환자 이름 확인, 수술 부위 재확인, 손 씻기. 너무 당연해서 무심코 지나치던 일들이다.

하지만 그 당연함을 하나하나 되짚고 확인한 결과는 놀라웠다. 수술 후 감염률이 36%, 사망률은 47%나 감소했다. 단순해 보이는 절차의 반복이 생명을 구한 것이다. 그 작은 실천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 사례다.

조직의 위기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종종 원인을 복잡한 구조나 제도의 부재에서 찾으려 하지만 실제로는 지켜야 할 기본이 무너졌을 때 위기는 조용히 찾아온다. 금융회사의 내부통제도 다르지 않다. 거창한 시스템이나 최신 솔루션이 아니라 결국은 ‘기본을 원칙에 따라 반복하는 것’이 내부통제의 시작이다.

2008년 프랑스 대형 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은 직원 한 명이 저지른 불법 거래로 약 72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손실을 봤다. 2020년 미국 웰스파고은행에서는 실적 압박에 시달리던 직원들이 200만 개가 넘는 유령 계좌를 개설했다. 모두 내부통제 시스템은 존재했지만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시스템은 있지만 문화가 없었다.

‘Tone at the top.’ 조직문화는 가장 위에 있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최고경영진이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실천으로 보여주는지를 임직원은 말이 아니라 눈으로 읽는다. 경영진이 스스로 규정과 원칙을 존중하는 일관된 메시지를 보낼 때 그 태도는 조직 전체에 잔잔하지만 강한 파장을 남긴다.

우리 조직도 그간 상시 감시 시스템 구축 등에서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크고 작은 사고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 사례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느낀 것은 시스템의 성능보다 중요한 게 ‘문화’라는 사실이다. 조직의 체온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태도와 습관이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원리와 원칙, 상호 존중과 배려, 규정에 입각한 복무 자세와 업무 처리. 너무 당연해서 종종 간과한 그 원칙들을 우리는 다시 꺼내 되새겼다. 단지 문서로 정리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열 가지 표어로 만들어 일상에 녹여냈다. 컴퓨터 배경화면과 회의실 벽면부터 내부 교육 자료까지. 구성원이 무심코 지나치는 그 순간에도 원칙이 스며들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이제는 조직원 모두가 알고 있다. 경영진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단지 강조용 문구가 아니라 실제로 지켜야 할 태도임을. 변화는 단숨에 오지 않는다. 작은 실천이 모이고, 그것이 문화가 되면 내부통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습관이 된다.

우리는 앞으로도 그 기본을 반복할 것이다.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일관된 태도로. 언젠가 내부통제가 충실하게 작동하고, 그것이 신뢰받는 조직문화로 자리 잡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날은 누군가의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실천한 작은 원칙 하나에서 비롯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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