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수면학회가 매년 3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 직전 금요일을 ‘세계 수면의 날’로 정해 수면 건강의 중요성을 알리는 이유다. 그런데 한국인은 지난해 하루 평균 8시간 4분을 잠자는 데 썼다고 한다. 통계청이 10세 이상 국민 2만5000명을 대상으로 24시간 활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다. 1999년부터 5년 주기로 이뤄진 6번 조사 가운데 우리 국민의 수면시간이 줄어든 것은 처음이다. 2019년 수면시간은 8시간 12분이었다.
▷특히 국민 10명 중 1명은 자려고 누웠지만 제때 잠들지 못하고 평균 30분 넘게 뒤척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60세 이상 고령층에서는 수면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20%에 육박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를 세며 불면의 밤을 보내는 한국인이 이만큼 많다는 뜻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수면 장애나 불면증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은 2022년 현재 110만 명에 달한다. 동네 곳곳에 수면 클리닉이 들어서고, 6년 전 올라온 ‘수면 유도 음악’ 동영상이 조회수 1억 회를 돌파한 배경이다.
▷통계청 조사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앞서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이 17개국 3만6000명을 조사한 결과에서는 수면의 양과 질에 대한 한국인의 만족도가 40%에도 못 미쳤다. 매일 숙면한다는 응답자도 7%로 세계 평균의 절반에 그쳤다. 한국인이 꿀잠을 자기 위해 지갑을 여는 규모는 이미 한 해 3조 원을 돌파했다. 오죽하면 ‘마약 베개’, ‘기절 베개’에 잠자기 전 스마트폰 사용을 강제로 막을 ‘휴대전화 감옥’까지 등장했겠나.▷꿀잠을 방해하는 건 여럿이지만 과도한 스트레스와 극심한 경쟁, 불안 등이 1순위로 꼽힌다. 이번 통계청 조사에서도 직장인의 84%, 학생의 73%가 업무와 학업으로 인한 피로를 호소했다. 여기에다 한국인이 스마트폰, 태블릿 등으로 유튜브, 넷플릭스 같은 미디어를 시청하는 여가 시간은 5년 전 조사보다 2배 가까이 급증했다. 침대에 누워서까지 스마트폰을 쥐고 사는 생활 습관이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고 불면 사회를 고착화시키는 셈이다. 잠은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영역이지만, 수면 부족은 사회·경제적 손실로 이어진다. 도둑맞은 한국인의 잠을 되찾아야 할 때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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