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임수]8년 전처럼 탄핵정국 틈탄 식품가격 줄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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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서도 “장보기가 겁난다”,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말이 괜한 엄살이 아니다. 연초부터 과자, 빵, 아이스크림, 커피, 햄버거, 컵밥까지 뭐 하나 안 오른 게 없어서다. 올 들어 불과 한 달 남짓 동안 가격을 이미 올렸거나 인상을 예고한 식품기업이 열 손가락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롯데웰푸드·빙그레 같은 제과·빙과업체부터 오뚜기·대상 등 식품 제조업체, 파리바게뜨·버거킹 등 프랜차이즈, 스타벅스·폴바셋 등 커피 브랜드까지 품목을 가리지 않는다.

▷기업들이 내세우는 가격 인상의 배경은 원재료 비용 급등이다. 세계적인 이상 기후에 트럼프발 ‘관세 폭탄’ 화염까지 옮겨붙으면서 국제 농산물 가격이 치솟고 있는 건 사실이다. 커피 원두 가격은 브라질과 베트남이 극심한 폭염과 가뭄에 시달린 탓에 자고 일어나면 최고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초콜릿 원재료인 코코아는 지난해에만 170% 넘게 급등해 “비트코인보다 더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입 대두, 밀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마저 1400원대가 뉴노멀이 되면서 기업의 비용 부담은 더 커졌다.

▷하지만 계엄·탄핵 정국의 혼란한 틈을 타 식품업계가 무더기로 가격 인상에 나섰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그동안 정부 눈치를 보느라 인상을 망설였던 기업들이 국정 공백이 두 달 넘게 이어지는 상황을 틈타 기습적으로 가격을 올렸다는 것이다. 지난해만 해도 농림축산식품부는 식품기업들을 수시로 소집해 가격 동결을 압박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제품 용량을 줄여 꼼수로 가격을 올리는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해 과태료를 물리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런데 올 들어서는 먹거리 가격 인상을 통제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12월 일부 식품기업이 가격을 인상했지만 어려운 국내 여건과 소비자 물가 부담 등을 고려해 식품업계의 가격 인상은 당분간 없을 것으로 파악된다”는 게 1월 초 내놓은 농식품부의 보도자료다. 이러니 정부의 ‘물가 컨트롤타워’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도 식품업체들의 가격 인상 릴레이가 이어진 바 있다. 당시에도 맥주, 커피, 라면, 치킨, 햄버거 등 품목을 가리지 않았다. 이 여파로 박 전 대통령 탄핵 시기인 2016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농축수산물 소비자물가는 예년의 두 배 수준인 7.5% 뛰었다. 민간 기업에 밑지면서 장사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요즘 같은 내우외환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 기업들도 고물가를 부추기는 가격 인상을 가급적 자제하는 게 옳다. 먼저 뼈를 깎는 원가 절감 노력을 기울이고, 하다 하다 안 될 때 가격을 올리는 것이 소비자들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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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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