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장원재]인구절벽 지자체 “난민, 소각장, 화장장도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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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외곽에는 국내 유일 여성 전용 교도소인 청주여자교도소와 청주교도소, 청주외국인보호소가 모여 있다. 과밀 상태이고 시설이 노후화돼 이전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일자 지난해 충북 보은군과 경북 청송군이 “우리 지역으로 와 달라”며 손을 들었다. 보은과 청송은 전성기 대비 인구가 3분의 1 이하로 줄어든 소멸위기 지역이다. 교도소를 유치하면 재소자와 교정공무원이 유입되면서 인구가 늘고, 면회를 오는 이들로 인한 경제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 구애에 나선 것이다.

▷교도소, 소각장, 화장장 등은 전통적으로 주민들이 꺼리는 기피 시설이다. 해외도 마찬가지여서 ‘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는 영어 문장을 줄인 ‘님비(NIMBY)’란 단어가 통용될 정도다. 하지만 최근에는 소멸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피 시설 유치에 나서는 지자체가 적지 않다. 경남 거창군은 지원금 60억 원과 운영 수익 20% 공유를 내걸고 화장장 부지를 공모했는데 9곳이 신청했다. 선정된 대야리는 주민 97%가 유치에 찬성했다. 제주에선 소각장 공모에 3곳이 신청해 상천리가 선정됐고, 강원 태백시와 전북 남원시는 지역 요구에 따라 교도소 건립을 확정했거나 추진 중이다. 기피 시설이 님비 대신 ‘핌피(PIMFY·제발 우리 앞마당에 지어 달라)’의 대상이 된 것이다.

▷난민이나 교포 유치에 나선 곳도 있다. 울릉도를 제외하면 전국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경북 영양군은 주민 수가 1만5000명 아래로 떨어질 위기에 처하자 미얀마 난민 40명을 유치하기 위해 법무부와 협의 중이다. 영양군은 그동안 교도소 유치, 양수발전소 건립, 북한이탈주민 정착촌 조성 등도 추진했다. 인구가 17만 명에서 12만 명대로 떨어진 충북 제천시는 중앙아시아 3곳에 협력 사무소를 두고 고려인을 유치하고 있다.

▷주민 동의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기피 시설 유치에 나섰다가 내홍을 겪는 곳도 있다. 광주시는 지난해 소각장 후보지 모집에 7곳이 지원하자 “주민 인식이 개선된 결과”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후보지가 3곳으로 압축된 후 해당 지역 주민 일부가 삭발 등을 하며 강하게 반대해 후보지 선정이 무산됐다. 경북 포항시 동해면도 지난해 화장장 유치를 놓고 찬반으로 나뉘어 대립한 끝에 유치에도 실패하고 주민 간 불화만 생겼다.

▷해외에선 기피 시설에 예술을 더해 관광 명소로 만든 곳이 여럿 있다. 친환경 건축가 훈데르트바서가 리모델링한 후 오스트리아 빈의 랜드마크가 된 슈피텔라우 소각장이 대표적이다. 소멸 위기 지역의 아쉬운 처지를 이용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기피 시설을 안기는 대신 주민들이 해당 시설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면 더 많은 지역이 흔쾌히 기피 시설 유치 경쟁에 뛰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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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논설위원 peaec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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