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신광영]상담 꺼리는 대전 화재 생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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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대전 안전공업에서 불이 난 건 점심시간 때였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휴게실 등에서 쪽잠을 자며 쉬고 있던 직원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폭발음과 함께 불이 번지면서 익숙한 일상의 공간은 절규로 가득 찼다. 2, 3층의 직원들은 유독 가스와 고열을 견디지 못하고 에어매트가 깔리기도 전에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온몸에 재를 뒤집어쓴 채 바닥에 쓰러진 이들도 많았다. 직원 364명 중 사망자가 14명, 부상자가 60명에 달한다. 나머지 직원들 역시 그날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생존자들이다.

▷불구덩이에서 살아남은 직원들은 여러 감정에 시달리고 있다. 친한 동료가 숨지거나 다친 모습을 목격한 충격,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 계속 일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교차한다고 한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징후들이다. 정부는 산업재해를 겪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트라우마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전 화재 생존자들 중 심리 치료를 받은 사람은 많지 않다. 상담받은 직원이 18%에 불과하다.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선 다신 그런 위험을 겪지 않을 것이란 안정감이 필수라고 한다. 그런데 일터에서 끔찍한 사고를 겪은 노동자들은 다시 그 현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아비규환의 기억이 되살아날 수밖에 없다. 지난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직원이 기계에 끼여 사망한 사건에선 동료들이 숨진 피해자의 시신을 그대로 목격했다. 그런 작업장에서 다시 기계를 돌려야 하는 노동자들은 이번엔 나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떨치기 어렵다. 이들에 대한 심리 치료가 더없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공장이 통째로 불탄 대전 화재는 거의 전 직원이 트라우마를 안게 된 사건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나약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상담을 망설이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아직 우리 사회엔 심리적 불안을 개인의 약점으로 낙인찍는 왜곡된 인식이 남아 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게 알려지면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이곳 직장을 잃을 경우 다른 일자리를 찾기 쉽지 않다는 것도 부담이라고 한다. 대전 화재 생존자들을 여전히 움츠리게 만든 요인들이다.

▷트라우마 치료는 사고 발생 후 7일에서 4주가 골든타임이다. 보통 이 시기는 사고 조사와 책임자 규명에 관심이 쏠려 생존자 마음 건강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이번 화재 사고처럼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은 사람은 다시 떠올리는 게 고통스러워 회피하는 것이 정상 반응이라고 한다. 동료들끼리 심리 상담 경험을 공유하며 권하는 문화도 미처 형성되지 않았다. 경영진이 주도적으로 상담을 통한 극복을 독려하지도 않은 듯하다. 산재 사고 후엔 마음 치료를 받는 것이 당연한 절차이자 권리라고 여긴다면 이들이 상담실로 향하는 발길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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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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