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영]“직 걸겠다” “사표 말려서”… 이복현의 경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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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최근에 (김병환) 금융위원장께 연락을 드려서 (사퇴) 입장을 말씀드렸거든요.” 2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본인이 사의를 표명했음을 불쑥 밝혔다. 진행자가 묻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공개했다. 그런데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께서 연락을 주셔서 시장 상황이 너무 어려운데 경거망동하면 안 된다고 자꾸 말리셨다”고 했다. “직을 걸겠다”는 소신을 지키려 물러나려고 했더니 주변에서 간곡히 만류해 뜻을 접었다는 얘기다.

▷“사실 공개된 자리에서 막 다 얘기할 건 아닌데”라면서도 방송을 통해 요란하게 밝힌 사의 소동은 지난달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달 13일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법제화한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이 원장은 정부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며 강하게 주장했다. “직을 걸고 반대한다”는 말이 이때 나왔다.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재계에 공개토론을 제의하고, 라디오에 나와 외환시장 충격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소관 부처인 법무부도, 직제상 상급 기관인 금융위원회도 제치고 나선 좌충우돌에 ‘월권’이란 지적이 나왔다.

▷결국 거부권이 행사되자 사의를 밝혔다던 이 원장이 마음을 돌린 건 지금이 엄중한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침 미국이 상호관세를 발표하면서 3일 잡힌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 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4일 탄핵 심판 선고 결과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국정 혼란과 대외 경제 환경 악화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도 아니고, 금융당국 수장으로서 직의 무게를 생각했다면 애초에 사퇴 운운하며 불협화음을 내지 말았어야 했다.

▷대통령의 생각이 자신과 같다는 듯 언급한 것도 논란이 됐다. 2일 이 원장은 라디오에서 “주주가치 보호와 자본시장 선진화는 (윤석열) 대통령께서 직접 추진한 중요 정책이고 대통령께서 계셨으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으리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지난해 1월 윤 대통령이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맞지만, 이후 숱한 논의를 거쳐 지난해 11월부터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소액주주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정부 입장이 정리돼 있었다.

▷금융당국 수장의 발언은 진중하고 일관돼야 하지만 취임 후 이 원장의 행보는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민간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임기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해 관치논란을 불러왔고, ‘공매도 재개’ 같은 섣부른 발언과 대출 정책에 대한 오락가락 지시로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직을 걸었다지만 임기가 두 달가량 남은 그의 일정은 해외 출장에 지방 은행 순시, 유튜브 출연까지 빼곡하다. 임기가 끝난 뒤 무엇을 노리는 건지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는 행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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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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