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현우의 AI시대] 〈26〉인더스트리 4.0과 피지컬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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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현우 서울대 산업공학과 객원교수황보현우 서울대 산업공학과 객원교수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제조업을 휩쓴 화두는 '인더스트리 4.0'이었다. 4차 산업혁명을 위한 핵심 과제로 통용되는 인더스트리 4.0은 높은 인건비와 고령화로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화된 독일에서 산업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등장했다. 인더스트리 4.0은 디지털화라는 시대적 트렌드에 부합하고, 프로세스 혁신을 통한 효율성 향상이라는 보편적인 지향점을 추구하고 있기에 불과 몇 년 만에 글로벌 어젠다로 급부상했다. 과거 전 세계적으로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채택되었던 식스 시그마(6σ) 운동과 같은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이러한 제조 플랫폼 혁신의 골자는 디지털(digital)화되고, 똑똑(smart)하며, 네트워크로 연결된(connected) 공장으로의 전환이었다. 인더스트리 4.0의 핵심인 사이버 피지컬 시스템(Cyber Physical System:CPS)은 제조와 물류의 전 과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데이터와 로봇을 활용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는 오늘날 시대적 트렌드로 부상한 피지컬 인공지능(Physical AI)와도 맞닿아 있다.

피지컬 AI는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이 CES 2025 기조연설에서 AI의 궁극적 발전상으로 언급한 이후 본격적으로 주목 받고 있다. 젠슨 황은 생성형 AI 이후에는 AI 에이전트(Agentic AI)의 시대가 도래하며, 궁극적으로 피지컬 AI가 대세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피지컬 AI를 가상의 공간을 넘어 모빌리티와 휴머노이드와 같은 물리적 실체를 직접 작동하는 AI로 정의하면서, 그 중심에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 블랙웰과 휴머노이드 로봇 '오렌지'와 '그레이'를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수의 AI 전문가 역시 차세대 AI의 모습은 AI와 로봇이 결합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한편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휴머노이드 100'이라는 보고서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향후 10년 내 60조달러(약 8.6경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국내 벤처캐피털(VC)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37곳 중 31곳이 AI를, 27곳이 로봇을 유망 투자분야로 손꼽았다. 기술 전문가도, 금융 전문가도 모두 피지컬 AI를 주목한 것이다.

미래 사회를 예측하는 훌륭한 도구인 공상과학(sci-fi) 영화에서도 영화감독들은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견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일찌감치 영화 '터미네이터'(Terminator) 시리즈를 통해 로봇과 AI가 결합된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류와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 'A.I.'(A.I. Artificial Intelligence, 2001)를 통해 사람과 유사한 감성을 가진 휴머노이드 로봇의 등장을 예견했다.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은 영화 '아이, 로봇'(I, Robot, 2004)에서 인간을 보조하는 역할로 설계된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의 자리를 넘볼 수 있음을 그렸다. 이들 영화 속 배경이 2030년대 전후임을 감안하면 영화감독들이 예상했던 기술 진보속도와 현실로 나타난 기술이 어느 정도 일치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머지 않은 미래로 다가온 피지컬 AI에 대해 기업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로봇과 모빌리티 분야에서 AI를 접목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테슬라는 전기차 생산공장에 휴머노이드 로봇인 '옵티머스'를 배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구글은 로봇 개발업체 앱트로닉(Apptronik)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산업용 휴머노이드 로봇 '아폴로' 개발 중이다. 메타는 체화된 AI(embodied AI)에 대한 연구와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오픈AI는 원엑스(1X), 피큐어AI, 피지컬인텔리전스와 같은 로봇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국내 기업들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피지컬 AI 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2021년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중심으로 사족보행 로봇 '스팟'과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발표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레인보우로보틱스, 베어로보틱스를 인수하면서 피지컬 AI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 중심의 투자만으로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국가 차원에서 피지컬 AI의 기반이 되는 기초학문 분야의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을 진행해야 더불어 교수와 학생 창업이 중심이 된 피지컬 AI 스타트업의 육성이 필수적이다. 이들을 장기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인내자본의 공급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산업과 AI를 동시에 이해하는 연구자와 창업가가 늘어나야 한다. 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의 장영재 교수와 제자 그룹이 공동 창업한 다임리서치는 우리나라에서도 피지컬 AI가 꽃피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다임리서치는 많은 기업들이 트렌드인 생성형 AI를 따라갈 때 최적화 AI와 로봇의 결합을 통한 비즈니스 모델을 현실화했다. 우리는 다임리서치와 같은 기업이 더 많이 등장하고,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과거 1만개 중소 제조공장을 스마트 팩토리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은 이제 피지컬 AI와 결합하여 더 큰 기대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이라도 AI와 산업을 융합한 'AI+X'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황보현우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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