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윤 칼럼] 속을지라도 믿어주는게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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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윤 칼럼] 속을지라도 믿어주는게 신뢰

법 왜곡죄가 시행(3월 12일)된 지 두 달여가 지났다. 특정인에게 이익을 주거나 해를 끼칠 목적으로 법을 왜곡할 경우 처벌하는 법 조항(형법 제123조의 2)이다.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도록 ‘강제’해 국민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법 시행 후 지난 6일까지 고발 건수는 327건, 피고발인은 5805명이다. 수사나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공간이 생겼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많은 사람이 조사를 받고, 법 집행이 활성화되면 국민 신뢰가 높아질까. 먼저 사법기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신뢰가 어떤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매년 발표하는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 법원과 검찰 신뢰도는 늘 바닥권이었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판결 논란, 전관을 예우하는 사례 등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신뢰도 꼴찌는 국회다. 여(與)와 야(野)로 나뉘어 존재하고, 입법 과정에서 서로 공방을 벌이고, 선거를 치르면서 치열하게 싸우는 존재다. 진영 논리에 매몰돼 상대방을 혐오하고, 약점을 찾아내 비방을 일삼는 행태가 늘 보도된다. 국회 신뢰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들의 잘못을 들춰내 처벌하면 국민의 신뢰를 높일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하다.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정치권 전체에 대한 이미지가 나쁜 것이지 국회의원 개개인 잘못은 아니기 때문이다. 법원과 검찰도 마찬가지다. 많은 판·검사가 처벌받는다고 해서 사법기관에 대한 국민 인식이 좋아진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범죄 집단으로 낙인찍혀 신뢰도가 추락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판결에 대한 불신이 크다. 중범죄를 다루는 형사합의부의 판결 항소율은 지난해 67.2%에 달했다. 경범죄를 다루는 형사단독 역시 항소율이 45.3%다. 어차피 항소심으로 갈 재판을 굳이 1심에서 판·검사들이 열심히 하겠느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여기에다 법 왜곡 혐의로 고발당할 위험에마저 노출됐다.

법 왜곡죄 재판을 지금의 법원 판사가 맡는 것도 아이러니다. 물론 혐의를 받는 당사자가 재판 진행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 신뢰를 높이기에 부적절하다. 업무가 과중한 상황에서 법 왜곡죄 재판까지 늘어나면 부실 재판 가능성도 커진다. 지금이 신뢰 붕괴 악순환의 초입일 수 있다.

가치관 차이를 ‘정치적 또는 이념적 편견’으로 오인해 고발하는 사례가 빈번해질 가능성도 우려된다. 판사가 법 해석과 판결에 최선을 다한다면 가치관 차이는 문제 될 게 없다. 주관(主觀)이란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게 절대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주관이다. 가치관과 경험이 묻어 있는 주관은 시대 변화상을 앞서 보여주는 소신 판결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공유하는 신뢰는 대부분 도덕적이거나 경험적인 가치에 기반을 둔 것들이다. 법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예컨대 우리는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을 때 돈을 먼저 내지 않는다. 무전취식한 사람이 있었을 텐데, 식당 주인은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는다. 내가 식사를 제공하면 손님은 그 값을 치를 것이라는 ‘상호 호혜성’에 대한 믿음이다. 당장 손해 보는 일이 생기더라도 장기적으로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산적 신뢰이기도 하다.

부모는 자녀가 거짓말을 하더라도 늘 믿어준다. 전폭적인 신뢰를 받은 자녀는 신뢰 있게 행동하는 사람으로 커간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피그말리온 효과다. 거짓말할 때마다 꼬치꼬치 따지고 벌을 주면 ‘나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부정적인 자의식이 생길 수 있다.

법은 중요하다. 무전취식도 사기죄로 처벌하고 있다. 법의 보호가 있기 때문에 사회적 신뢰 역시 작동한다. 하지만 법의 적용 범위를 최대한으로 넓히는 엄격함으로는 신뢰를 바로 세울 수 없다. 법의 영역이 커지면 신뢰의 영역은 좁아진다. 자녀에게 속을지라도, 도망치는 손님이 생길지라도 자신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적인 노력이 신뢰의 본질이다. 과중한 업무를 덜어주고 소신 있게 재판할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믿어주는 것이 사법 신뢰 회복의 정답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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