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한국 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외국인으로서 겪는 문제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생겼고, 왜 상대가 그러한 판단과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그 결과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기보다는 양측을 동시에 바라보는 중립적 시각을 지닐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변화에는 필자의 직업적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필자는 공공기관, 금융기관, 국제기구 등 다양한 분야의 기관에서 활동해 왔다. 특히 8년 이상 사법통역 업무를 해왔다. 수많은 피의자와 피해자의 진술 과정에 참여하면서 한쪽의 이야기만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체감할 수 있었다. 같은 사건이라도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진실처럼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은 감정보다 이성에 기반한 판단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해외에서 오랜 기간 생활한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외국 생활은 끊임없는 관계의 변화 속에서 이뤄진다. 기존의 관계는 사라지고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람은 점점 현실적인 판단 기준을 갖게 된다. 시야가 넓어지고 주관이 뚜렷해지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이런저런 경험을 다 가지고 있다는 점에 기대 고집이 강화되고 타협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 또한 경계해야 한다.최근 필자는 업무 특성상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국가기관인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를 자주 방문하게 됐다. 이곳은 체류자격 변경, 체류기간 연장, 각종 신고 및 사범 처리 등 외국인의 체류와 직결된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원칙적으로 사전 예약을 통해 이용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체류기간 만료가 임박한 외국인이라면 당일 번호표를 받아 이용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예외적 절차’가 현장에서는 사실상 일반적인 방식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최근 한 달 동안 여러 출입국 관련 기관을 방문하며 짧게는 수십 분, 길게는 3시간 이상 대기하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했다. 체류 자격이 걸린 외국인들에게 이러한 대기 시간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더해 기본적인 편의 인프라도 부족하다. 갑작스러운 서류 출력이 필요한 경우 출력이 가능한 기계가 배치된 장소도 제한적이다. 외국인등록증 발급을 위한 수수료 납부 과정에서도 현금자동인출기(ATM)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외국인들이 많다. 긴 대기 시간 속에서 이러한 절차가 추가될 경우, 민원인의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특히 출입국 행정은 외국인에게 가장 엄격하게 인식되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경험은 제도 전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물론 행정기관 역시 제한된 인력과 과중한 업무 속에서 모든 민원을 원활하게 처리하기 어렵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언어 장벽으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이 억지스러운 요구로 이어지고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게 문제가 악화되는 상황 또한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필자 역시 현장에서 이러한 상황을 직접 목격해 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피로와 불편을 완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개선은 충분히 가능하다. 예를 들어 출력 기기와 수수료 납부 시스템 등 기본적인 편의 인프라를 보완하는 것만으로도 현장의 혼란과 대기 부담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조치는 단순한 편의 제공을 넘어 행정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외국인을 대하는 행정은 단순한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외국인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공정성과 원칙은 유지돼야 하지만, 동시에 이해 가능성과 예측 가능성이 함께 확보될 때 비로소 행정에 대한 신뢰가 형성된다.
필자는 더 이상 어느 한쪽의 입장만을 대변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것은 외국인과 행정기관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같은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제는 단순한 제도 운영을 넘어 ‘이해 가능한 행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벗드갈 몽골 출신·글로벌 비에이 유학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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