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라서 환해지는 뭄바이 여성의 삶…영화 '우리가 빛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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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인도 영화…심사위원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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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속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2천만명이 복닥거리며 사는 인도 뭄바이는 잠들지 않는 도시다.

1960년대 서울이 그랬던 것처럼 뭄바이 역시 비슷한 시기에 젊은이들이 기회를 좇아 몰려들면서 활력 넘치는 메가시티로 성장했다.

밤이 찾아와도 빽빽이 들어선 마천루와 야시장, 일터에는 불이 꺼지지 않는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어떤 고난에도 버텨내는 '뭄바이 정신'이라는 말도 생겼다.

그러나 뭄바이의 이면은 세계 최악의 빈부격차와 카스트 제도로 대변되는 신분 차별, 낮은 여성 인권, 소수 종교 배척 등 여러 사회 문제로 들끓고 있다. 뭄바이가 '정글'에 비유되는 이유다.

"뭄바이는 꿈의 도시가 아니에요. 착각의 도시죠. 하지만 그 착각을 믿어야 해요. 그래야 미치지 않고 살 수 있거든요."

파얄 카파디아 감독이 연출한 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의 주인공 프라바(카니 쿠스루티 분)와 아누(디브야 프라바), 파르바티(차야 카담)는 이렇게 말한다.

낡은 병원에서 일하는 이들은 모두 고향을 떠나 뭄바이로 온 이주민이다. 젊은 여성인 프라바와 아누는 간호사로, 중년 여인 파르바티는 식당에서 근무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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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속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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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살림은 팍팍하기 그지없지만 가난 말고도 더 큰 문제를 저마다 안고 있다.

프라바는 부모가 맺어줘 결혼한 남편이 독일로 간 뒤 소식을 끊어 속앓이하는 중이다. 이제는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남편이지만, 마냥 그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다른 남자에게 이끌리는 마음마저 가까스로 억누른다.

그래서인지 그는 한집에 사는 동료이자 친구 아누를 이해할 수 없다. 아누는 무슬림 남자와 사귄다는 소문이 병원에 퍼지면서 "헤픈 여자"로 낙인찍혔다.

파르바티는 동네에 고급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바람에 30년 넘게 산 집에서 내쫓길 처지다. 변호사를 찾아가도 방법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다.

하지만 영화는 세 사람이 현실에 가로막혀 절망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아누는 힌두교 남자와 중매결혼 하라는 엄마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연인과의 만남을 이어간다. 파르바티는 집을 앗아간 아파트 옥외 광고판을 향해 힘껏 돌멩이를 던진다. 프라바는 이런 두 사람을 때로는 도우면서 때로는 보듬으면서 든든한 울타리가 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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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떠나 대도시에 자리 잡은 세 사람 각자의 삶은 어둡지만, 함께일 땐 환히 빛난다.

제목이 암시하듯 빛을 활용한 연출 덕에 영화에는 몽환적인 정서가 흐른다. 뭄바이에서의 일상을 보여주는 전반부는 대부분 밤에 촬영됐다. 눈이 아플 만큼 밝은 노점상의 전구부터 공원의 은은한 가로등, 휴대전화 손전등이 거리와 사람들을 비춘다. 해가 떠 있는 동안은 기계처럼 일만 해야 해 "누군가 시간을 훔쳐 간 것 같다"고 느끼는 이들은 밤이 돼서야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파르바티의 고향인 해안 마을을 배경으로 한 후반부는 아스라한 햇볕과 판타지를 섞은 듯한 스토리로 꿈결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닷가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나직이 이야기를 나누는 엔딩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간간이 나오는 실제 뭄바이 여성들의 음성으로 영화는 더 시적으로 다가온다. 집을 나와 어딘가로 일하러 간 여성들에 관한 영화를 오래전부터 구상했던 카파디아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뭄바이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해 영화에 삽입했다. 이들의 목소리와 도시의 풍경이 어우러지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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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속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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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지난해 제77회 칸국제영화제에서 2등 상인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인도 영화가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건 1994년 샤지 카룬 감독의 '스와함' 이후 30년 만이었다.

이후 뉴욕타임스, AP통신, 할리우드리포터 등 유력 매체가 선정한 2024년 최고의 영화 1위에 올랐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역시 지난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을 꼽아 화제가 됐다.

23일 개봉. 118분. 15세 이상 관람가.

rambo@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4월19일 08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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