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만주-조선 아우른 관광 유행… 경성 패싱하는 ‘北鮮 루트’ 등장
상공업자 주도 관광협회 조직해… 상점 알선 등 경성을 관광 상품화
청자 등 기념품 산업이 이익 누려… 日 패전 국면에 ‘관광 경성’ 종막
관광은 근대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다. 자본주의 대중사회가 형성되고 새로운 교통망이 발달하면서 관광은 비로소 가능해졌다.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시작된 관광은 이를 모델로 근대화를 추진하던 일본에 전파됐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잇달아 승리하면서 일본에서는 만주, 조선을 아우른 관광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시모노세키(下關)에서 관부연락선을 타고 부산에 도착한 뒤, 경부선과 경의선을 따라 경성, 평양 등 조선의 주요 도시를 거쳐 만주로 넘어가는 동선이었다.》
협회의 활동은 경성 관광 활성화에 효과가 있었다. 1935년 4월 19∼25일 경성 단체관광객에게 일본여관과 조선여관, 선사품 판매점, 유람버스, 백화점, 카페, 조선요리점, 내과의원, 여행용품 상점, 사진관, 조선 인삼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할인권을 배포했다. 협회는 관광객이 “경성에 뿌리는 돈은 30만 원에 달하리라”라고 예상하며 시내에 “황금우(黃金雨)”가 쏟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동아일보, 1935년 4월 17일).
실제로 그해 4, 5월 꽃놀이철 경성을 찾은 관광객은 151개 단체, 8689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40% 이상 증가한 수치다(조선일보, 1935년 6월 6일). 1937년에는 “관광데이를 개최하려는” 계획도 세웠다. ‘관광의 밤’ 야간 영화, 무용 감상회 개최, 관광 스탬프 제작, 트렁크 배송 서비스, 홍보물 제작, 라디오 관광 강연, 여관 종업원 서비스 강습회 개최 등을 준비했다(조선일보, 1937년 1월 21일). 이를 통해 “여관과 교통기관, 상점가 등의 번영에 많은 공헌”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매일신보, 1937년 3월 4일). 관광산업 활성화에 따른 번영을 기대한 상점은 다양했지만, ‘오미야게(おみやげ·기념품) 상점’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경성의 기념품 상점은 일본인 상권의 핵심인 남대문통과 본정통에 모여 있었다. 관광객의 다수가 일본인이었기 때문이다. 그중 유명한 곳이 본정 2정목에 위치한 해시상회(海市商會)였다. 설립자 우미이 벤조(海井辨藏)는 1892년 일본 오사카에서 상점을 열었고, 한때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기도 했다. 러일전쟁 발발 즈음인 1904년 조선으로 건너와 식품 잡화상을 운영했으나, 1907년부터 지방을 돌며 공예품을 수집해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조선 물산 토산품의 대량 생산, 염가 대판매” “해시상회는 원조입니다” “해시상회는 다년간 조선 물산의 보호, 조장에 전력을 기울여 조선 컬러의 발휘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등의 선전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해시상회는 일찍부터 기념품을 직접 제작했다. 그중에서도 ‘주력 상품’은 일본인 사이에 인기가 많았던 고려청자였다. 해시상회는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12년 동사헌정(東四軒町·현재 중구 장충동)에 공장을 세우고 청자의 재현품을 생산하기 시작해 “조선 고미술의 부흥을 이끌어냈다”는 평을 듣기까지 했다(부산일보, 1918년 11월 7일). 1930년 상공장려관이 주관한 공예품 품평회에서 해시상회의 중역인 이와미야 쇼베에(巖宮庄兵衛)가 제작한 청자 화병이 2등상을 수상했다. 1934년에는 해시상회의 기술자 최창성이 표창장을 받았다(동아일보, 1930년 10월 23일, 1934년 3월 31일).
‘작품’을 뽑는 선전(鮮展·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상한 기록도 있다. 1932년 제11회 선전에는 우미이가 청자 화병을, 1939년 제18회 선전에는 이와미야가 연적을 출품해 입상했다. 그런가 하면 청자로 만든 말차 다기(抹茶茶碗夏冬), 도쿠리(德利), 오비도메(帶止·일본 전통 의상의 허리띠 고정 장신구) 등을 판매한 것도 눈에 띈다. 관광 상품으로 일본화한 청자인 셈이다.
경성의 관광을 활성화하려는 노력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존재했다. 경성관광협회 이사로 선임된 친일 지식인 윤치호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관광협회 발기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조선 호텔에 갔다. 이 협회의 목적은 조선에서 여행자들이 집처럼 편안함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일본인들과 조선인들이 동일한 목적을 위해 함께 일하도록 초청된 모든 다른 협력 활동들과 마찬가지로 조선인들은 돈으로 도움을 주는 것 말고는 그 일에 있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고 있다. 조선 속담에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그 속담을 다음과 같이 변경할 수 있다. 우리는 떡을 제공하고 굿을 하고 무당이 떡 먹는 것을 본다.”(윤치호 일기, 1933년 5월 9일)1936년의 한 조선어 언론의 사설은 “야앵(夜櫻) 관광단이 경성에 범람하여 대혼잡 상태를 일으”키는 것은 “무의의한 경제적 소비”, “철도국이 그 수입을 증가하는 방편”에 불과하며, “관광 여객의 유치 흡수라는 것은 각국이 다 경제상으로 여행자의 포케트를 털어내려는 목적으로 힘쓰는 사업”이라고 비판했다(조선일보, 1936년 7월 9일). 경성의 관광 활성화는 결국 주로 일본인이었던 관광 관련 업자의 이익일 뿐이라는 속내가 드러난다.
1930년대 후반 이래 침략전쟁의 와중에도 관광 활성화를 통해 이익을 도모하려는 관련 업자들의 활동은 계속됐다. 그러나 일본이 패전 국면으로 들어가면서 관광의 동력은 사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1944년 8월 경성관광협회는 경성전시(戰時)교통협력회라는 전쟁 협력 조직으로 개편됐다. 이로써 ‘관광의 경성’의 꿈은 종막을 고했다.
염복규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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